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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씀을 읽고 회개하라 (느 9:1-22)

말씀을 읽고 회개하라(9:1-22)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 용서하시는 하나님,

우리에게 희망을 주시는 하나님을 버리지 마십시오.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십시오.

 

부흥은 말씀 듣고 회개하는 것

 

52일 동안의 성벽 재건 공사가 끝났습니다. 성벽을 재건하는 동안 공사를 방해하는 세력들이 수없이 많이 나타났지만 느헤미야는 비전과 믿음으로 적들의 모함을 모두 물리쳤습니다. 성벽이 재건되자 백성들은 고향으로 돌아가 안착했습니다.

그러나 성벽 재건이 끝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경험하고 하나님의 기적을 맛본 이스라엘 백성들은 고향에 앉아서 계속 잠만 잘 수가 없었습니다. 그들에게 영적 목마름이 생겼습니다. 말씀에 대한 갈증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학사 에스라를 초청해서 말씀을 듣습니다. 학사 에스라는 큰 두루마리 성경책을 가지고 와서 하루에 여섯 시간씩 읽었습니다. 설교를 하거나 해석해주는 것이 아니라 그냥 읽어주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에스라가 읽어준 말씀만으로도 충격을 받고 말씀을 듣는 순간 손을 들고 아멘! 아멘!” 소리를 지르고 땅에 얼굴을 대고 납작 엎드려 여호와께 예배를 드렸습니다. 이것이 바로 예배입니다. 이것이 바로 말씀의 감격입니다. 지금 우리가 드리는 예배가 진정한 예배인지 점검해봐야 합니다. 우리는 춥거나 비가 오거나 배가 고프면 예배 드리러 오지 않을 때도 많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말씀을 들으면 우리 안에 예배가 살아나고 부흥이 일어납니다. 말씀 없는 부흥은 바른 것이 아닙니다. 사람이 많아졌다고 부흥한 것이 아닙니다. 부흥은 말씀을 듣고 회개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말씀을 듣고 울기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자연스럽게 일어난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얼마나 울었던지 느헤미야와 학사 에스라와 레위 사람들이 백성들을 향해 이날은 주의 날이다. 슬퍼하거나 울지 말고 여호와를 기뻐하라.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다라고 권면했습니다.

 

끊임없이 개혁하라

 

우리가 말씀을 듣거나 읽을 때 깨달아져야 합니다. 자신의 잘못된 생각을 바꿀 수 있는 것이 바로 말씀입니다. 그래야 부흥이 시작됩니다. 이게 이스라엘 백성들이 말씀을 들은 첫쨋날 이야기입니다. 둘쨋날도 학사 에스라를 초청했습니다. 그리고 말씀을 또 들려 달라고 요청합니다. 말씀은 들으면 들을수록 자꾸 빨려 들어갑니다.

그런데 첫쨋날과 달리 둘쨋날 읽은 말씀에서 처음 그 말씀을 들은 듯 새롭게 깨닫는 것이 있었습니다. 바로 초막절에 대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40년 동안 광야생활을 할 때 고생했던 것을 기억하기 위해 초막절을 지켰습니다.

초막절에는 7일 동안 텐트를 치고 고통스러운 삶을 삽니다. 쓴 나물을 먹고 무교병을 먹고 잠자리도 험합니다. 그러면서 과거를 돌이켜보게 하는 것입니다. 홍해 사건을 돌이켜보고, 애굽에 있던 사건을 돌이켜보고, 광야생활을 돌이켜보고,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일곱 족속과 싸우던 일들을 회상하면서 일주일을 보냅니다.

그런데 자기들이 지키고 있는 초막절은 모세를 통해서 준 예배와 너무 차이가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래서 온 백성들이 성읍과 성전에 말씀대로 초막을 다시 지었습니다. 진짜 예배를 드려보자는 마음으로 초막절을 다시 지키게 된 것입니다. 일주일 동안 천막 안에서 살면서 율법책을 낭독하고 팔 일째 되는 날에는 광장에 모여 큰 집회를 열었습니다.

여기서 매우 중요한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비슷한데 다른 게 있습니다. 대부분의 크리스천은 크리스천 같은데 아닙니다. 겉모양만 비슷합니다. 벗겨보면 가짜 그리스도인이 많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도 지키지 않고 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의 눈은 속일 수 있지만 하나님의 눈은 속일 수가 없었습니다. 형식적이고 전통적인 예배를 개혁하는 것,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는 것이 바로 개혁이고, 부흥입니다.

마틴 루터가 종교개혁을 했을 때 그 당시 사람들이 가지고 있던 전통적인 종교적 개념을 바꿔버렸습니다. 그는 성경으로 돌아가자면서 종교개혁을 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성경을 잘못 이해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예배가 잘못됐고, 예배가 잘못됐기 때문에 모든 형식이 잘못되면서 그것이 전통이 돼버린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성경보다는 전통적인 형식을 우선순위에 두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끊임없이 개혁해야 합니다. 끊임없이 형식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우리가 진짜 하나님을 바라보고 있는지 점검해야 합니다. 날마다 자기를 성찰하고 자신을 돌아보는 것이 개혁입니다. 그래야 부흥이 일어납니다.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

 

1, 2절을 읽겠습니다. “그 달 24일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두 모여 금식하고 베옷을 입고 머리에 흙먼지를 뒤집어썼습니다. 그리고 스스로 모든 이방 사람들과의 관계를 끊고 제자리에 선 채로 자기들의 죄와 자기 조상들의 죄악을 고백했습니다.”

성벽공사를 모두 마치고 3주가 지났는데, 그동안 그들은 말씀을 듣고 회개하고 변화되기 시작했습니다. 특별히 예배가 변화되었습니다. 교회가 변하려면 예배가 변해야 합니다. 새로운 예배,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사람이 규정해놓은 예배는 점점 감옥에 갇히게 되는 것과 같습니다. 부흥하는 교회들은 나름대로 새로운 예배,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 드리기 위해서 몸부림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두 모여 금식하고 베옷을 입고 머리에 흙먼지를 뒤집어썼다는 것은 회개했다는 뜻입니다. 진정한 회개가 뒤따랐다는 얘기가 그 다음에 나옵니다. 스스로 모든 이방 사람들과의 관계를 끊었다는 것은 지금까지 세상 사람들처럼 살아온 것을 모두 회개했다는 의미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얼마나 세상적으로 사는지 아십니까. 우리 아이들은 더 말할 것도 없습니다. 주일에 한 시간 동안 주일학교 예배를 드리는데, 일주일 내내 세상 교육을 받고 있습니다. 누가 이기겠습니까. 그나마 부모가 아이들을 도와주지 않으면 아이들은 자랄 때부터 게임이나 인터넷에 빠지기 쉽습니다. 대부분의 부모는 아이를 교회에 맡겨놓고 교회학교 교사를 찾아뵙지 않습니다. 그에 반해 학교 선생님은 열심히 찾아다닙니다. 어떻게 우리 아이들이 믿음을 갖겠습니까.

1절의 이방 사람들과 관계를 끊으라는 말은 이방 사람들과의 결혼을 끊으라는 말입니다. 국제결혼을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영적 혼음을 경고하는 말씀입니다. 이방인과 결혼을 잘못하면 이방종교가 그 가문으로 들어옵니다.

 

선 채로 회개한 이스라엘 백성들

 

이스라엘 백성들은 선 채로 회개했습니다. 심지어 자기 조상들의 죄까지 회개했습니다. 우리는 자기가 지은 죄만 회개합니다. 그런데 부모들이 지은 죄가 후손에게까지 오기 때문에 자기의 죄뿐 아니라 조상의 죄까지 자신의 죄로 여기고 회개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를 건너 광야에 와서 목이 곧아지고 불순종하고, 하나님 대신에 금송아지를 만들어 하나님을 배신했습니다. 그 죄를 회개했다는 말입니다.

그들이 말씀을 들었기 때문에 회개할 수 있었습니다. 똑같은 말씀일지라도 어제 들었을때와 오늘 들을 때가 다릅니다. 어제 깨닫지 못한 것을 오늘 깨달을 수도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큐티입니다. 우리가 늘 보던 말씀인데도 어느 날에는 그 말씀이 비수가 되고 폭포수처럼 가슴을 흔들어놓기도 합니다. 말씀은 백 번을 읽어도 늘 새롭습니다. 저는 설교를 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말씀을 알고 있습니다. 같은 본문으로 여러 번 설교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똑같은 말씀이라도 오늘 보면 새롭게 깨달아지는 것이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아니, 이 말씀에 이런 진리가 숨겨져 있다니라고 생각하며 깜짝 놀랍니다.

특별히 우리가 가장 잘 아는 말씀에 진리가 보물처럼 함축되어 있습니다. 잘 아는 찬송가는 잘 알기 때문에 잘 부르지 않습니다. 잘 아는 말씀에 대해 설교하는 사람도 별로 없습니다. 그런데 잘 아는 말씀일지라도 설교하려고 하면 더 깊은 것을 묵상하고 깨닫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내 지식만큼 성경이 보이는 게 아니라 내 믿음과 영적 상태만큼 성경이 보입니다. 그렇게 보이는 말씀으로 인해 전율을 느끼고 회개하게 됩니다. 그래서 저는 요즘 내가 믿고 있던 예배가 전통이 되지 않았나, 형식화 되지 않았나, 과거에 집착하고 있지 않는가를 끊임없이 질문하고 고민합니다.

 

하나님을 영원토록 찬양하라

 

3절을 읽겠습니다. “그들은 또 각자의 자리에서 일어서서 낮 시간의 4분의 1은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의 율법책을 읽고 또 4분의 1은 죄를 고백하며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께 경배했습니다.”

낮의 4분의 13시간 정도를 의미합니다. 3시간 정도 성경을 읽고 나서 회개할 게 또 생 겼다는 것입니다. 과거에는 죄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게 죄라는 것을 깨닫게 되고, 과거에는 바르게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살고 있는 게 바른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죄를 고백하고 경배와 찬양을 한 것입니다.

4, 5절을 읽겠습니다. “레위 사람인 예수아, 바니, 갓미엘, 스바냐, 분니, 세레뱌, 바니, 그나니가 단상에 서서 큰 소리로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께 부르짖었습니다. 그리고 레위 사람들, 곧 예수아, 갓미엘, 바니, 하삽느야, 세레뱌, 호디야, 스바냐, 브다히야가 백성들을 향해 외쳤습니다. ‘모두 일어나서 주 너희 하나님을 영원토록 찬양하라! 주의 영광의 이름을 송축합니다. 주께서는 모든 찬송과 찬양 위에 높임을 받으소서.’”

레위 사람 중 일부는 단상에 서서 하나님께 큰 소리로 경배와 찬양을 하며 예배를 드렸습니다. 5절에는 또 다른 레위 사람이 나옵니다. 한쪽 제사장은 하늘을 향해 소리를 지르고, 한쪽 제사장은 백성들을 향해 소리쳤습니다. “모두 일어나서 주 너희 하나님을 영원토록 찬양하라! 주의 영광의 이름을 송축합니다. 주께서는 모든 찬송과 찬양 위에 높임을 받으소서라고 외치며 백성들을 가르쳤습니다.

 

약속을 반드시 지키시는 하나님

 

여러분, 말씀과 회개가 이렇게 반복해서 나타나면 신앙고백이 터져나옵니다.

6절부터 8절까지 읽겠습니다. “오직 주만이 여호와십니다. 주께서는 하늘과 하늘 위의 하늘과 그 위에 떠 있는 별무리와 땅과 그 안에 있는 모든 것, 바다와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다 짓고 생명을 주셨으니 하늘의 만물이 주를 경배합니다. 주께서는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주께서 아브람을 선택해 갈대아 우르에서 끌어내시고 아브라함이라는 이름을 주셨습니다. 그 마음이 주께 신실한 것을 보시고 주께서 가나안 족속과 헷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여부스 족속과 기르가스 족속의 땅을 그 자손에게 주시겠다고 그와 언약하셨는데 의로우신 주께서는 주의 약속을 지키셨습니다.”

하나님은 약속한 것을 한 번도 지키지 않은 적이 없습니다. 반드시 지키시는 분입니다.

요약해보면 오직 주만이 여호와시며, 주께서는 하늘과 하늘 위의 하늘과 그 위에 떠 있는 별무리와 땅과 그 안에 있는 모든 것, 바다와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다 짓고 생명을 주셨으니 하늘의 만물이 주를 경배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신앙고백을 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셨습니다. 하늘에 대한 설명을 보십시오. 성경 기자들의 우주적인 세계관을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현대인들도 발견하지 못하는 과학의 세계를 모두 발견했습니다.

우리는 비가 오고, 구름이 끼고, 태양이 뜨는 하늘을 볼 수 있는데, 그 하늘 위에 또 하늘이 있다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하늘을 단수가 아니라 복수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늘 위에 하늘이 있고 그 하늘 위에 또 다른 하늘이 얼마나 있는지 상상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위에 별무리들이 떠 있습니다. 별무리와 땅과 바다와 그 안에 모든 것들을 하나님이 만드셨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것만 얘기하는데, 느헤미야서의 기자는 우리가 상상조차 못하는 하늘 위의 하늘까지 기록하고 있습니다.

 

신실하신 하나님

 

9절부터 15절까지 읽겠습니다. “주께서는 우리 조상들이 이집트에서 고난받는 것을 보시고 또한 그들이 홍해에서 부르짖는 소리를 들으시고 표적과 기사를 바로와 그의 모든 대신들과 그 땅의 모든 백성들에게 보내셨습니다. 이집트 사람들이 그들에게 얼마나 교만하게 굴었는지 주께서 아신 것입니다. 이렇게 해 주께서 오늘의 명성을 얻으셨습니다. 주께서는 우리 조상들 앞에서 바다를 갈라 그들이 마른 땅을 딛고 건너가게 하셨지만 그들을 핍박하는 사람들은 깊은 물에 돌을 던지듯 깊음 속에 처넣으셨습니다. 그들을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인도하시고 밤에는 불기둥으로 갈 길을 비춰 주셨습니다. 주께서는 시내 산에 내려오셔서 그들에게 말씀하시고 의로운 규례와 참된 율법과 선한 율례와 계명을 그들에게 주셨으며 주의 거룩한 안식을 그들에게 알려 주시고 주의 종 모세를 통해 계명과 율례와 율법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들이 굶주렸을 때 하늘에서 양식을 내려 주셨고 그들이 목말랐을 때 바위에서 물을 내어 먹이셨습니다. 그리하여 주께서 전에 손을 들고 그들에게 주기로 맹세하신 그 땅에 들어가 차지하라고 하셨습니다.”

여러분이 잘 아는 내용입니다. 과거에 일어났던 일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과거의 일들을 회상하도록 만들어주는 말씀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미래는 우리의 과거라고 말합니다. 미래를 생각하면 누구든지 절벽에 서있는 것 같습니다. 미래가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과거를 돌이켜보십시오. 내가 죽을 뻔했을 때 나를 살려주시고, 내가 절망 가운데 있을 때 희망을 주셨습니다. 또 내가 저주와 가난과 핍박 속에 있을 때 나를 그 가운데서 건져내셨습니다. 지나온 과거가 곧 미래에 나타날 얘기입니다. 안 보이는 게 아닙니다. 지나온 과거를 생각해보면 우리의 미래가 확실히 보인다는 말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항상 생각하는 미래는 네 가지입니다. 첫 번째는 이집트에서 고생하던 것입니다. 두 번째는 그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기도하며 하소연하고 눈물 흘리던 것입니다. 세 번째는 하나님이 애굽에서 해방시키기 위해 홍해를 건너게 한 것입니다. 네 번째는 40년 동안 광야에서 살게 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고통 받던 때 얼마나 눈물로 기도하며 하나님께 하소연했겠습니까. 하나님이 그 소리를 듣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 홍해를 가르게 하신 사건입니다.

광야에서 하나님이 고기도 주시고 만나도 주시고 율법도 주시고 생수도 주시고 불기둥도 주시고 구름기둥도 주셨던 사건을 모두 회상해보라는 말씀입니다. 마지막으로는 여호수아를 통해서 가나안 땅을 점령했던 사건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고 신실하신 분입니다. 우리에게 미래가 안 보이는 것 같지만, 지금도 하나님은 우리에게 약속한 모든 것을 이미 이루어주셨습니다. 의심하지 말고 그분을 신뢰하십시오.

 

불순종으로 받는 고난

 

16절을 읽겠습니다. “그러나 우리 조상들은 교만하고 목이 곧아져서 주의 계명을 듣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기적을 보여주셔서 직접 눈으로 봤지만 기적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애굽으로 돌아가려고 했고, 금송아지를 만들었고, 조금만 힘들어도 불평과 원망의 말을 했습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은혜를 베풀어주셨음에도 불구하고 자꾸 딴짓을 하고 딴생각을 하자 하나님이 화가 난 것입니다.

광야에서 이스라엘까지 가는 데 2주밖에 걸리지 않습니다. 그런데 광야에서 40년을 보냅니다. 구름기둥이 이동해야 그 구름기둥을 그늘 삼아 사람들이 이동할 수 있는데, 하나님께서는 구름기둥을 움직이지 않으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불순종했기 때문에, 쉽게 끝날 일인데 많은 대가를 치르고서야 끝난 것입니다. 결국 1세대는 가나안 땅에 못 들어가고 다음 세대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됩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의 죄뿐만 아니라 조상들의 교만과 불순종한 사건을 기억하면서 조상의 죄까지 회개한 것입니다.

17절을 읽겠습니다. “그들은 순종하지 않고 주께서 그들 가운데 일으키신 기적을 곧 잊었습니다. 그들은 목이 곧아져 거역하고 두목을 세워 종살이하던 곳으로 돌아가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주께서는 용서하시는 하나님이요, 은혜와 긍휼이 많으며 더디 화내시고 사랑이 많으신 분이기에 그들을 저버리지 않으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40년 동안 광야에서 고생했음에도 불구하고 또 불순종합니다. 또 과거로 돌아가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용서하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더디 화내시고, 사랑이 많으신 분이기 때문에 비록 그렇게 했다 할지라도 이스라엘 백성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자기를 위해 송아지 형상을 부어 만들고 이것이 바로 너를 이집트에서 인도해낸 너희 하나님이다라고 하며 하나님을 모독했을 때에도 용서하고 그들을 품어주셨습니다(18). 곧 느헤미야 시대의 사람들의 모습과 똑같은 것입니다. 지금 우리의 모습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기록이 수없이 반복되지만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교만과 고집이 가득했기 때문입니다.

 

다시 기회를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

 

19절부터 22절까지 읽겠습니다. “주께서는 주의 큰 긍휼로 그들을 광야에 버려두지 않으셨습니다. 낮에는 구름 기둥이 떠나지 않고 그 길을 안내했고 밤에는 불기둥으로 그들이 가는 길을 밝히 비춰 주셨습니다. 또 주의 선한 영을 주어 그들을 가르치셨습니다. 주께서는 그들의 입에 만나가 끊이지 않게 하시며 그들이 목말라 하면 물을 주셨습니다. 주께서는 그렇게 40년 동안 광야에서 그들을 돌보셨기에 그들이 부족한 것이 없었습니다. 옷도 낡지 않고 발도 부르트지 않았습니다. 주께서는 여러 나라들과 민족들을 우리 조상에게 굴복시켜 주셨고 그 영역을 나눠 주셨습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헤스본 왕 시혼의 땅과 바산 왕 옥의 땅을 차지했습니다.”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결론적으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고 용서해주십니다. 우리를 품어주시고 은혜를 베풀어주시고 다시 기회를 주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기회를 놓치지 마십시오.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 용서하시는 하나님, 우리에게 희망을 주시는 하나님을 버리지 마십시오.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십시오.

세상은 점점 어두워져 가고 악의 세력이 승승장구하는 이때에 믿음의 사람들이 힘을 합하여 주님을 찬양하고 예배드리는 복이 여러분에게 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안심하십시오. 하나님은 여러분을 용서하십니다. 기회를 주십니다. 사랑하십니다. 할렐루야!

 

성벽 복구 후 말씀 부흥
악의 순환인가 은혜의 순환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