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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스도인의 자유와 권리 (요 1:13)

고국을 탈출해 제주도에 머무는 예멘 난민으로 우리 사회가 혼란스럽습니다. 정치계는 정치계대로 종교계는 종교계대로 나름의 이유로 논쟁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을 수용해야 한다는 주장과 수용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 설왕설래했습니다. 그런데도 우리가 난민을 거부할 수 없는 이유는 유엔난민협약에 가입하고 독자적인 난민법을 제정한 대한민국의 보호 의무가 있기 때문 아닐까요.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인간으로서의 자유와 권리를 그들에게도 고려해야만 할 것입니다.

자유와 권리는 난민에게만 국한할 문제는 아닙니다. 그리스도인 모두가 소중히 여길 권리입니다. 생명 있는 것은 모두 자유를 누릴 권리가 있습니다. 특히 사람으로서 누릴 자유로워질 권리는 오랜 역사의 시행착오를 거쳐 검증되고 확증된 권리입니다. 그런데도 현대사회의 어두운 이면에서는 자유와 권리를 짓밟거나 방치하는 일들이 여전히 자행되고 있습니다.

아담 이후로 모든 사람은 죄의 종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드신 사람을 너무나 사랑하셔서 구원하시기로 작정하셨습니다. 그래서 친히 사람의 몸을 입으시고 그리스도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십자가 위에서 대신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 예수를 구세주로 영접하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습니다. 어떤 이유에서 권세를 주셨을까요.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요 1:13)와 같은 말씀이 그 답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난 우리이기 때문입니다.

이를 두고 예수님께서는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 종은 영원히 집에 거하지 못하되 아들은 영원히 거하나니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로우리라”고 본문에서 말씀하셨습니다. 즉 하나님으로부터 난 사람은 누구든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만 참 자유를 누릴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과거 몇몇 교회는 곡해된 하나님의 말씀을 사람들에게 전했습니다. 교회의 법으로 사람들을 구속했던 어두운 역사도 외면할 수 없습니다. 제대로 해석하지 않은 하나님 말씀 위에 알량한 교회의 법이 세워졌습니다. 그리고 그 교회의 법 위에 무소불위 귀족 사제의 ‘갑질’이 횡포를 부렸던 역사가 있습니다. 종교개혁운동은 그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기 위한 시도였습니다.

그러나 얀 후스로부터 603년, 마르틴 루터로부터 501년이 지난 오늘날 대한민국의 기독교회와 그리스도인은 얼마나 자유로울까요. 세속법보다 교회의 법이 상위법이라고 착각하는 교권주의자들의 횡포와 교회보다도 한심하다고 치부하는 그 세속에 찌든 비도덕적인 목회자들의 갑질 속에 우리는 과연 자유로울까요.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고, 사람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신 하나님의 무한하신 은혜를 확신하며 사는 사람은 모두 참된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런 그리스도인은 모두 주 안에서 자유인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갈 5:1)고 말했습니다.

이처럼 성경에 의해 확증되고 그 말씀을 주신 하나님에 의해 보호받는 그리스도인은 누구든지 주 안에서 참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자유와 권리를 누릴 수 있습니다. 나아가 그 자유와 권리를 세상을 향해 외치고 선포할 자격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당당해야 합니다. 인간으로서의 자유와 권리가 억압될 때 당당하게 그 잘못을 외칠 자격이 있습니다. 그 자격은 세상을 향해서만 국한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보장하신 그리스도인의 자유와 권리를 착취하는 일부 교회의 횡포와 지극히 세속적인 갑질 목회로부터도 당당하게 자유와 권리를 주장하며 세워나가야 합니다.

강종권 사관(구세군부천교회)

‘왜’라는 질문 없이
유난히 더운 계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