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삼하
대상
왕상
대하
삼상
왕하
 
장 :
 
 
전체
 
고전
살전
딤후
벧후
요3
고후
살후
요1
딤전
벧전
요2
 
장 :
 
 
구약전체선택
신약전체선택
신/구약전체선택
 
 
 
 
   
HOME < 설교 < 책별
 
  새 계명을 주시다 (요 13:34-35)

구약성경에 나오는 최고의 사랑은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는 것입니다. 누구든 제 몸은 아낄 줄 압니다. 그러니 이웃의 몸도 아껴주라는 것이 구약이 말하는 바입니다. 그러나 신약성경 본문에서는 한 단계 넘어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34절)는 말씀이 나옵니다. 예수님 사랑은 자신이 죽어서라도 다른 사람을 살리는 사랑이기에 구약보다 훨씬 더 높은 차원의 사랑입니다.

서로 사랑하라는 새 계명은 내 기분대로 하는 사랑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그 계명을 “내가 너희를 사랑하는 것 같이”라며 명확히 정의해 주셨습니다. 내 마음대로 내가 좋아하는 방법으로 사랑하는 것은 새 계명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면서 자신을 낮춰 제자들을 씻기셨습니다. 우리를 위해 대신 목숨까지 버리며 사랑하셨습니다.

율법의 기본정신은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입니다. 이를 묶어 서로 사랑하라고 말씀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면서 자신을 낮추고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면서 가난한 자와 병든 자, 소외된 자를 돌봤습니다.

오늘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대부분 고통은 서로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빚어지는 비극입니다. 우리 가정의 상처를 비롯해 내면의 상처 더 나아가서는 육신의 질병까지도 그 원인을 파고들어가 보면 사랑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돌아보면 제일 결핍된 것이 사랑입니다. 기도도 하고 봉사도 하지만 우리 마음은 여전히 각박해 있고 하나님을 믿는 것도 얼마나 이기적인지 모릅니다.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35절)

이 말씀으로 돌이켜 보건대 서로 사랑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할까요. 제자들이 만일 서로 사랑하지 아니하면 아무리 예수님을 믿고 교회를 다닌다고 해도 세상 사람들은 우리를 예수의 제자로 인정하지 않을 겁니다. 그들은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모습을 보고 참 예수의 제자답다고 인정하게 될 것입니다.

세상은 예수님을 미워합니다. 세상은 예수님의 제자들까지 미워합니다. 그런 상황에서 성도들끼리 서로 아웅다웅하고 다툰다면 세상을 이길 수 없습니다. 우리가 예배드리며 기도하고 전도하는 것보다 힘써야 할 일은 서로 사랑하는 일입니다. 로마가 복음화된 것은 초대교회가 서로 사랑하라는 계명을 문자대로 실천했기 때문입니다. 굶주린 사자 앞에서도 자신을 희생해 형제를 살리는 사랑을 보면서 로마 사람들은 예수를 믿게 됐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에게 그리스도인이란 눈에 보이는 상표가 붙어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에게 표식이 있다면 이는 사랑입니다. 그 밖에 어떤 것을 가지고도 세상 사람들이 우리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인식할 수는 없습니다.

서로 사랑하면 죄를 안 짓습니다. 이웃을 사랑하면 이웃에게 악을 행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죄를 짓는 것은 사랑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천국에 가면 어떻게 살아왔는지 하나님의 기념 책에 다 기록돼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해서 무엇을 했으며 이웃을 사랑해서 어떻게 살았는가 등이 모두 있습니다. 그러므로 새 계명을 지켜서 서로 사랑하는 것은 교회를 성장시키고 세상을 이기며 천국에 가서도 상급이 있는 일입니다.

우리는 사랑이 계명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만 합니다. 예수님은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라며 사랑을 단순한 가르침의 말씀이 아닌 계명으로 주셨습니다. 반드시 지키도록 명령으로 주신 것입니다. 사랑은 은사이기 전에 계명이라는 것을 꼭 기억해야 합니다. 이 시간 우리가 사랑하지 못하고 있다면 치유받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수님 명령대로 서로 사랑하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박병규 사관 (구세군기성교회)

마무리를 잘하자
종노릇 잘하는 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