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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큰 것이 담아야 할 의로움 (신 4: 6-8)

사람들은 큰 자가 누구라고 생각합니까. 많이 가진 자라고 생각합니다. 돈이 많고, 지식이 많고, 권력이 높고, 지위와 명예가 높은 자를 큰 자라고 생각합니다. 성도나 교회들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교인수가 많고, 재정이 넉넉하고 역사가 길면 큰 교회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정말 성경이 말하는 큼은 무엇일까요.

신명기 17장은 약속의 땅 가나안에서 통치할 이상적인 왕을 말합니다. 성경은 역사 속에서 형성되기 때문에 현실에 대한 부정적인 면에 비추어 진리를 제시합니다. 세속적인 왕이 가진 부정적인 측면을 거울로 삼아서 이상적인 왕의 모습을 제시합니다. 왕의 부정적인 면은 무엇인가를 많이 두지 않아야 합니다. 그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말(馬)을 많이 두지 않아야 합니다. 말은 국방을 말합니다. 당시에 말은 애굽에 많았기에 말을 가지러 출애굽한 곳인 애굽으로 돌아가지 말라고 합니다. 둘째는 아내를 많이 두지 않습니다. 왕의 결혼은 정치·외교적인 측면을 반드시 가지게 됩니다. 고대 사회일수록 왕은 여러 아내를 두어서 내치와 외치를 합니다. 단지 성적인 측면으로만 보는 것은 단면적인 이해입니다. 그래서 많은 아내는 정치·외교적 측면입니다. 

셋째는 은금을 많이 쌓지 않아야 합니다. 이는 경제적 측면을 말합니다. 국방과 정치 및 외교, 경제는 국가 존립의 근간입니다. 이것은 어떤 통치자든지 중요하게 여겨야 합니다. 그래서 다다익선(多多益善)일 조건들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이것을 많이 가지는 것을 부정적으로 봅니다. 세 가지의 공통적 단어는 ‘많이’입니다. 많은 것이 왜 해가 됩니까. 많음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많음을 의지하게 합니다. 현실적 필요가 의지할 만큼 많아지는 것은 국가를 무너지게 만듭니다. 대신에 하나님의 말씀을 복사해서 가까이 두고 읽고 의지해야 합니다.

율법에 무엇이 기록되어 있기에 그러합니까. 신명기 4장 본문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이스라엘의 크고 위대함을 소개합니다. 먼저 지혜와 지식이 큰 나라입니다. 둘째는 기도할 때마다 가까이함을 입은 큰 나라입니다. 세 번째는 규례와 법도가 공의로운 큰 나라입니다. 모든 통치자들은 크고 강한 나라를 만들기를 원합니다. 

성경에서 큰 나라는 하나님과 그 말씀을 아는 지혜가 의로움으로 나타나는 나라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구체적으로 실천되는 방식이 기도입니다. 신명기에 기도가 언급되는 본문이 두 군데 있습니다. 첫째는 15장 9절입니다. ‘면제년(안식년)이 가까이 왔다 하고 네 궁핍한 형제를 악한 눈으로 바라보며 아무것도 주지 아니하면 그가 너를 여호와께 호소하리니.’ 

둘째는 24장 15절입니다. 가난한 품꾼이 그날의 삯을 받지 못하면 여호와께 호소합니다. 이 두 가지의 호소가 이스라엘의 큰 나라 됨의 증거입니다. 가난하고 약한 자들의 호소가 있지 않는 나라가 큰 나라입니다.

예수님은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고,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고 하셨습니다.(마 20:26∼27) 오늘 이 시대에 우리는 성도들이나 교회들의 큰 자 답지 못한 모습을 많이 보게 됩니다.

세상의 높음을 추구하면서 부정에 연루되는 성도들은 큰 자가 아닙니다. 숫자가 많은 대형교회들이 세습이나 하면서 크고 많음을 이용해 교회정치를 타락시키는 현실은 세상과 같은 많음과 큼을 추구한 것입니다. 복음이 자리잡은 한국사회는 일자리 문제가 극도로 고통스러운 현실입니다. 이런 때에 재벌 상속과 같은 세습에 교회적 질서까지 짓밟는 교회의 행위는 참된 큼을 잊어버린 반복음적 행위입니다. 우리 교회들은 세상과 다른 섬김과 낮아짐의 복음적 가치를 가지고 존재하고 섬겨야 하겠습니다. 샬롬.

이세령 목사(복음자리교회)

천국의 예배 누리는 신앙 원리
우상인가 복음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