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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넘치도록 풍성한 은혜 (딤전 1:12-20)

우리 주님은 넘치는 은혜를 주시는 분이십니다. 은혜를 주시고 따르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주님은 사울이 믿지 않을 때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음에도 오래 참고 용납하셨습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이 되는 은혜를 주셨습니다. 예수님을 전할 직분을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은혜가 넘치도록 풍성하다”고 찬양했던 것입니다.

바울은 이러한 주님의 은혜를 묵상하면서 “하나님께서 창세전에 이미 예정하시는 은혜를 주셨다”고 감사했습니다.(엡 1:3∼5) 이렇게 넘치는 주의 은혜를 감사했던 바울이기에 육체의 가시, 사탄의 가시를 놓고 기도할 때도 하나님의 은혜로 받아들이면서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때에 강함이라”면서 적극적으로 수용했던 것입니다.(고후 12:1∼10) 

주님은 베드로를 부르실 때 “두 배에 채우매 잠기게 되었더라”(눅 5:7)고 할 정도로 고기를 풍성히 잡게 하셨습니다. 후에 베드로가 고기 잡는 일을 포기하고 “이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눅 5:10)는 말씀에 순종하도록 하셨습니다. 삭개오나 마태가 주님을 만날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들은 자기가 추구하던 세상의 재물보다 더 귀한 복이 주님으로부터 오는 것을 보았기에 삶을 돌이켜 주님을 따를 수 있었습니다.

반면 마태복음 19장에 나오는 부자 청년은 하늘의 보화를 보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을 대접하겠다고 청했던 바리새인도 “이러므로 내가 네게 말하노니 그의 많은 죄가 사하여졌도다 이는 그의 사랑함이 많음이라 사함을 받은 일이 적은 자는 적게 사랑하느니라”(눅 7:47)는 말씀을 들어야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러한 교훈을 근거로 우리에게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울 것을 권고합니다. 그리고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질 것을 권면합니다.

후메내오와 알렉산더 같은 자들은 양심을 버리고 믿음의 파선을 당한 후 에베소교회를 장악했습니다. 그리고 성도들을 하나님의 은혜에서 멀어지도록 만들었습니다. 이 일을 해결해야 하는 디모데에게 가장 필요했던 것은 넘치도록 풍성한 하나님의 은혜를 다시 확인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로부터 출발해야 디모데의 사역이 바르게 잡히고 에베소교회가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 나의 모습은 어떠합니까. 하나님의 은혜가 넘치도록 풍성했습니까, 아니면 더 큰 은혜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가 나의 신앙생활을 이끌고 있습니까. 아니면 더 큰 은혜를 받기 위한 간절함이 내 삶을 이끌고 있습니까.

바울은 예수 믿는 성도들을 핍박하던 자신을 하나님께서 불러주셨다는 사실적인 고백을 했습니다. 창세전부터 하나님께서 예정하신 은혜에 대한 찬송의 고백입니다. 그래서 “세상 모든 풍파 너를 흔들어 약한 마음 낙심하게 될 때에 내려주신 주의 복을 세어라 주의 크신 복을 네가 알리라”는 찬송(429장)도 나왔습니다. 우리 신앙의 근저에 하나님의 큰 은혜가 있습니다.

바울이 죽도록 헌신했던 이유는 간단합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넘치는 은혜를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그 은혜를 알게 된 이후로는 사탄의 가시까지도 감사하게 여겼습니다. 그 은혜를 믿었기에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 8:28)는 믿음의 선포를 할 수 있었습니다.

바울은 더 나아가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롬 8:38∼39)고 선언합니다. 하나님의 넘치는 은혜를 받은 우리도 이 같은 고백을 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고종혁 대전 영천감리교회 목사

죽어야 한다
천고마비의 계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