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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구영신] 한 해의 끝(딤후 4:6-13)
   글쓴이 : 바이블넷     조회 : 1146    

한 해의 끝(딤후 4:6-13)

해마다 12월이 되면 각 나라들은 한해를 결산하면서 올해의 단어, 혹은 사자성어를 선정하여 발표합니다. 일본은 올해의 단어로 새로울 ‘신(新)’이 선정되었습니다. 50년이 넘는 자민당 지배가 무너지고 새로 출범한 정권에 대한 기대감이 반영되었고, 세계를 뒤흔든 신종플루 사태에 대한 경각심이 반영된 것으로 풀이했습니다. 중국은 ‘워쥐’라는 말을 선정했습니다. 이 말은 ‘달팽이집’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이 말은 달팽이집 정도의 작은 집을 마련하기 위해 고초를 겪는 서민들을 묘사한 것입니다. 올해 중국은 부동산 개발로 인한 부의 편중이 커졌다고 합니다. 급격히 풀린 자금이 부동산 시장에 흘러들면서 졸부들이 속출하고 있지만 서민들은 급등하는 집값에 절망하고 있는 현실을 보여준 것이라고 합니다.

미국은 인터넷에서 가장 많이 검색한 단어로 올해는 ‘트위터(twitter)’를 선정되었습니다. 트위터는 개인용 컴퓨터나 휴대전화를 통해 짧은 메시지를 전하는데 이용되는 온라인 서비스를 뜻합니다. 우리나라의 휴대폰문자서비스와 비슷합니다. 지난 6월 이란 테헤란의 반정부 시위 상황을 실시간으로 전 세계로 타전하면서 이름값을 얻었다고 합니다. 특히 50만 정도였던 이용자 수가 1년 만에 1800만 넘어서면서 인터넷 혁명을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으며 미국을 대변했다고 전합니다.

우리나라는 올해의 사자성어로 ‘방기곡경(旁岐曲逕)’이 선정되었습니다. 방기곡경은 사람이 많이 다니는 큰 길이 아닌 샛길과 굽은 길을 이르는 말입니다. 정당하고 순탄하게 일을 하지 않고 그릇된 수단을 써서 억지로 한다는 것을 비유할 때 쓰인다고 합니다. 올해 정치권이 타협과 합의를 이루지 못하고 독단적으로 일을 처리하는 행태를 빗댄 것으로 풀이했습니다

. 2009년 한국은 모든 부분에서 점점 나아지고 있습니다만 유독 정치는 대립과 갈등으로 좀처럼 풀어지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정치가 먼저 잘되어야 모든 것이 탄탄하게 서는데 여전히 한국정치는 지탄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새해에는 무엇보다도 정치의 발전을 기대해 봅니다.

숨 가쁘게 달려왔던 한해, 그것이 샛길이든 굽은 길이든, 큰 길이든 이제 우리는 한해의 끝자락에 섰습니다. 정치도 경제도, 개인도 공동체도, 특히 믿음의 길을 걸어온 우리에게도, 흐르는 세월 속에 여기까지 왔습니다. 지금 우리는 한해의 끝자락에 서 있습니다. 과연 지금 이 순간에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한해의 끝자락에서 오늘 우리에게 하나님은 무엇을 말씀하실까요? 오늘 그것을 본문을 통해 함께 생각해 보기 원합니다.

첫째는 지난세월을 회상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디모데후서의 말씀을 읽었습니다. 디모데서는 사도바울이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전서와 후서로 나누어 목회와 사역의 중요한 원리를 알려줍니다. 디모데서는 바울이 기록한 마지막성경입니다. 그리고 본문은 두 개의 서신중의 나중에 기록한 디모데후서입니다. 그것도 4장으로서 마지막부분입니다. 또한 바울은 이것을 생애 마지막에 기록하였습니다. 그래서 본문 6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관제와 같이 벌써 내가 부음이 되고 나의 떠날 기약이 가까웠도다” 무엇보다도 바울이 이것을 기록한 때는 겨울이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21절에 이렇게 말합니다. “겨울 전에 너는 어서 오라” 그러니까 한해의 끝자락이기도 했다는 말입니다. 이처럼 바울은 성경의 끝에서, 기록의 결론에서, 인생의 마지막에서, 특히 한해의 끝자락에서 말씀을 전합니다.

끝자락에서 바울이 먼저 말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7절에서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것이 바울의 생애요, 삶이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이것을 지난 세월을 돌아보고 과거를 회상하며 강조하는 것입니다. 문법적으로도 분명히 과거로 말합니다.

원문성경은 더욱 분명히 과거를 강조합니다. 그렇게 바울은 지금 끝자락에서 지난세월을 회상하고 있습니다. 그는 선한싸움을 싸웠습니다. 달려갈 길을 잘 달려왔습니다. 무엇보다도 믿음을 잃지 않고 굳건히 지켰습니다. 이것이 바울의 생애요, 바울의 과거요, 바울이 예수를 만난 뒤 한결같이 달려온 신앙과 삶의 여정입니다. 한마디로 주님과 더불어, 하나님과 함께, 여기까지 하나님의 도움과 은혜속에 살아왔다는 것입니다.

한해의 끝자락에서 오늘 우리가 한번 짚고 넘어갈 것이 바로 이것이 아니겠습니까? 우리도 선한싸움을 싸웠고, 달려갈 길로 갔으며, 무엇보다 믿음을 지키며 달려왔습니다. 하나님과 더불어, 주님과 함께 여기까지 이르렀습니다. 돌아보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였고, 축복이며, 인도하심이었습니다. 오직하나님이 우리를 도와주셨습니다. 변함없이, 신실하게 우리와 함께 하셨습니다. 그래서 이럴 때 우리 삶을 잘 대변하는 귀한 찬송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이런 가사의 노래입니다. “하나님 한 번도 나를 실망시킨 적 없으시고, 언제나 공평과 은혜로 나를 지키셨네, 지나온 모든 세월들 돌아보아도, 그 어느 것 하나 주의 손길 안 미친 것 전혀 없네”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으셨습니다. 지난 모든 세월을 돌아볼 때 주님의 손길이 미치지 않은 곳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우리 모두 이 믿음을 고백하며 한해의 끝자락에서 하나님께 감사하시기를 바랍니다.

둘째는 앞을 바라보고 나아갑니다.

지난 세월을 돌아보며 주의 도움과 함께 달려온 생애를 회상한 바울은 이젠 앞을 바라봅니다. 8절에서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 도니라” 여기에서는 그는 자기를 위하여 예비된 의의 면류관, 하늘의 상급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자기도 받을것이고, 또 믿음의 길을 잘 달리는 모든 자들도 받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바울의 이 말은 지금 임하는 것이 아닙니다. 장래 앞으로 임할 것입니다. ‘이제 후로는’이란 말을 통해 분명히 알려줍니다.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그는 장래를 생각하고 있고, 끝자락에서 앞을 내다보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울의 신앙과 삶의 중심이었습니다. 그는 빌립보서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빌3:13-14) 그는 과거에 매이지 않았습니다. 과거에 집착하거나 머물지도 않았습니다. 지난세월을 회상하며 하나님께 감사를 했지만 과거로 돌아가지는 않았습니다. 그는 늘 미래지향적으로 살았습니다. 앞을 내다보며 기대하고 소망하며 살았습니다. 그래서 그에게는 늘 희망과 꿈이 있었습니다. 그 꿈을 향해 앞으로만 전진했습니다. 이것이 바울의 신앙이요, 믿음입니다. 성숙한 믿음의 모습입니다. 믿음의 사람은 앞을 향해 가는 사람입니다. 성숙한 사람은 과거로 돌아가지 않고, 과거에 메이지 않습니다. 날마다 꿈과 소망과 기대감을 가지고 앞을 향해서만 전진하는 사람입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는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믿음이 없는 자들입니다. 아니 믿음이 있다고 해도 성숙한 믿음이 아닙니다. 그것을 대표적으로 알 수 있는 것이 바로 그들은 앞으로 가지 못한 것입니다. 출애굽의 역사를 보면 이스라엘은 홍해를 건넌 뒤 광야에서 40년의 긴 세월을 보냈습니다. 가나안은 이렇게 오래 걸릴 길이 아닙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오래 걸렸을까요? 한마디로 그들은 앞으로 가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계속 전진하고, 앞으로 가야 하는데 가지 못하고 빙빙 돌았습니다. 그 이유는 그들의 불신앙, 불순종, 원망, 불평 때문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약속을 붙잡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홍해를 건넌 뒤에 애굽으로 돌아가려고 했습니다.

실제로 사람들이 돌아갔습니다. 그들은 툭하면 애굽에서 살 때가 좋았다고 말했습니다. 앞으로 들어갈 가나안은 분명 더 좋은 곳인데도 그것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바로 이것이 그들의 발목을 잡았습니다. 그래서 한걸음도 앞으로 가지 못하고 40년을 유리하고 방황한 것입니다. 그러다가 모두 광야에서 죽고 말았습니다.

여러분, 믿음의 길은 앞으로 가는 길입니다. 뒤로 가는 길이 아니고, 옆으로 새는 길이 아니라 오직 앞으로만 가는 길입니다. 성숙한 사람은 앞을 내다보고 전망하고 기대하고 나아가는 자입니다. 믿음이 있다고 해도 자꾸 과거만 붙잡고, 거기에 머물고 있는 사람은 성숙한 사람이 아닙니다. 그래서 믿음의 길을 가는 자는 아무리 화려한 과거라도 잊어야 합니다. 거기에 메이거나 붙잡고 살지 말아야 합니다. 또한 아무리 추한 과거라도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앞으로 계속 가는 길이 우리의 갈 길입니다.

이제 한해의 끝자락에서 우리는 내년을 바라보아야 하고, 우리의 앞을 소망하며 나아가야 합니다. 내년에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가 임하고, 앞으로 나의 생애 큰 축복이 임할 것을 기대하고 바라보아야 합니다. 나를 위해 예비하신 천국에서의 상을 바라보고 앞으로 가야 합니다. 새로운 한해도 벅찬 기대감 속에 계속해서 앞으로 전진하며 나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셋째는 지금 할 일에 충실하는 것입니다.

한 해의 끝자락에서 우리는 뒤를 돌아보며 감사하고, 앞을 내다보며 꿈과 소망을 품어야 하겠지만, 이제지금 이 순간 내가 해야 할 모든 일에 충실해야 합니다. 믿음의 사람은 바로 지금을 중요하게 알고 행하는 자입니다. 바울이 바로 그런 믿음의 사람입니다. 본문에서 바울은 끝자락에서 그가 지금 무엇을 할 것인가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그가 생각한 지금 할 일은 무엇보다도 ‘관계’를 재정립하는 것입니다. 그는 여기에서 두 가지 중요한 관계를 생각합니다.

먼저 하나님과의 관계입니다. 물론 지금까지도 하나님과 좋은 관계를 유지해 왔지만, 앞으로도 더 좋은 관계를 결심합니다. 그것을 알 수 있는 것이 13절의 말씀에서 찾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네가 올 때에 내가 드로아 가보의 집에 둔 겉옷을 가지고 오고 또 책은 특별히 가죽 종이에 쓴 것을 가져오라” 그는 디모데에게 드로아 가보의 집에 있는 겉옷을 가져오라고 요청합니다. 이것은 이제 곧 겨울이 되니까 몸이 쇠약한 바울이 추위를 많이 타서 특별히 요청한 것으로 여겨집니다. 그리고 겉옷과 함께 가죽종이에 쓴 것을 가져오라고 강조합니다. 여기 가죽종이에 쓴 것은 바로 구약성경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성경을 가져오라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과 더 깊은 관계, 더 좋은 교제를 갖기 위함입니다. 그는 지금까지도 마음속에, 생각 속에, 자기 손에 주어진 말씀을 소중히 여기고 말씀과 함께 하나님과 좋은 관계를 유지했습니다. 이제 다시 말씀을 통해 깊은 하나님과의 교제를 갖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확고히 다지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처럼 하나님과의 관계와 함께 사람과의 관계를 지금 할 일로 강조합니다. 그래서 9절 이하에서 여러 사람들을 언급합니다. 여기에 나오는 사람들을 눈여겨 보십시오. 데마, 그레스게, 디도, 누가, 마가, 두기고, 알렉산더 등을 언급합니다. 이들은 모두 바울 생애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던 인물들입니다. 끝자락에서 바울은 이들과의 관계를 새롭게 정립합니다.

여기 이들은 크게 두 부류의 사람들로 나눌 수 있습니다. 하나는 바울에게 힘과 위로가 되었던 사람들입니다. 대표적인 인물이 누가, 마가와 같은 사람입니다. 또 하나의 사람은 바울에게 상처와 실망을 준 사람들입니다. 대표적인 인물이 데마요, 알렉산더입니다. 데마에 대해서 그는 세상을 사랑하여 자기 곁을 떠났다고 말합니다. 그는 처음 주의 일을 함께 감당하다가 도중하차하고 세상길로 돌아선 사람입니다. 그래서 바울을 실망시킨 사람입니다. 또한 알렉산더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언급합니다. 14절에 보면 그는 바울에게 해를 보인 인물입니다. 그것도 단순한 해가 아니라 상처를 주었다고 강조합니다.

지금까지 바울에게 상처를 준 사람이 종종 있어도 이름은 언급하지 않았는데 구체적으로 말하는 것을 보면 적잖은 상처를 준 인물입니다.

바울은 바로 이런 사람들을 떠올리면서 이들과의 관계를 정립합니다. 그에게 힘과 위로가 되었던 사람들에 대해서는 은혜를 잊지 않고 고마움을 표시하고 있습니다. 또한 상처를 주고 해를 입은 사람들에 대해서 먼저 자신이 상처가 치유되었음을 말하고 용서하는 것을 봅니다. 왜냐하면 이런 공적인 편지에서 좋지 않은 것을 언급하는 것은 치유가 되지 않으면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16절에서 바울은 허물을 돌리지 않기를 원한다면서 용서했음을 강조합니다. 그는 이렇게 사람들과의 관계를 정립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이처럼 하나님과의 관계, 사람과의 관계를 지금 이 순간, 한해의 끝자락, 인생의 끝자락에서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과의 더 깊은 관계를 맺기 위해 말씀을 다시 붙잡고, 사람과의 관계를 새롭게 정립하며 나아갑니다. 먼저 힘과 위로가 되었던 사람들을 잊지 않고, 깊이 감사합니다. 그리고 상처와 아픔을 준 사람들까지도 용서하고 품으면서 사람들과 관계를 세워갑니다. 이것이 바울의 귀한 믿음의 모습입니다.

한 해의 끝자락에서 이제 우리도 지금 이 순간 내가 할 일을 감당해야 합니다. 먼저 하나님과의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합니다. 그래서 말씀을 다시 붙잡아야 합니다. 말씀을 가까이하고,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만나고, 말씀을 통해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나누어야 합니다. 그리고 사람과의 좋은 관계를 회복해야 합니다. 나에게 힘과 위로가 되었던 사람들에게 고마움을 전달하고, 카드라도 보내고, 식사라도 함께 해야 합니다. 그리고 상처와 아픔을 주었던 사람들이라도 이제 용서하고 풀어줘야 합니다. 언제까지 묵은 것이 내 속에 자리를 잡아야 하겠습니까? 새해가 되는데도 낡은 것을 버리지 못하면 새해의 의미가 무엇이겠습니까? 성경은 믿음의 삶을 이렇게 강조합니다. “아무에게도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하라” (롬12:17-18)

한해의 끝자락에서 이제 우리는 지난세월을 회상해 봅니다. 그래서 주의 손길 미치지 않은 곳이 없음을 알고 감사합니다. 한해의 끝자락에서 앞을 내다보며 꿈을 꿉니다. 새해에도 우리를 놀라게 할 은혜와 축복을 기대하며 소망합니다. 그리고 한해의 끝자락에서 이제 지금 내가 할 일을 알고 믿음으로 결단하고 헌신합니다. 먼저 하나님과의 더 깊은 관계를 위해 말씀을 붙잡아야 합니다. 그리고 사람과의 좋은 관계를 위해 위로하고, 격려하고, 용서하고, 품어야 합니다. 우리 모두 한해의 끝자락에서 이렇게 한해를 마무리하고, 새해를 맞이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멘)

 

기다리는 사람(눅 2:25-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