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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구영신] 마지막(벧전 5:7-14)
   글쓴이 : 바이블넷     조회 : 1065    

마지막(벧전 5:7-14)

오늘 읽은 말씀은 베드로의 첫번째 편지 결론입니다. 교회의 장로들에게는 장로의 책임과 섬김의 자세가 무엇인지 간곡하게 부탁한 다음 목자장이 오시면 시들지 않는 면류관을 주실 것이라는 말씀으로 고난의 때에 양무리들을 돌보는 장로들에게 위로와 소망을 약속하였습니다.

그리고 젊은이들에게는 장로들에게 순복하고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은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신다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 겸손하게 살면 겸손한 사람들을 높여주실 때가 있습니다.

베드로는 편지의 마지막 부분에서 몇 가지 당부의 말을 더 합니다. 첫째,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 이는 그가 너희를 권고하심이라’ 염려는 내 능력으로 감당할 수 없을 때 찾아오는 마음의 무거운 짐입니다. 나홀로 감당하기 어려운 짐은 나를 짓눌러 삶을 더욱 고단하게 만듭니다.

베드로의 편지를 받는 교우들은 이 세상 나그네였습니다. 기독교를 핍박하는 곳에서 성도들이 경건한 그리스도인으로 깨끗한 믿음을 지켜 사는 일이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나의 진심을 누가 알아주지도 않고 도리어 조롱하고 배척할 때 나그네의 삶은 배나 더 외롭고 고달픕니다.

그 힘들고 고달픈 짐을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 맡깁시다. ‘그가 너희를 권고하신다’하십니다. 이때 권고한다는 말은 영어의 ‘care for’어려움을 돌본다는 말입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고 돌보지 않는 나의 형편과 사정을 주님이 알아주시고 돌보십니다.

세상은 무거운 짐을 지고 가는 나를 향해 ‘무슨 상관이야?’ ‘난 관심 없어!’하고 외면하지만 주님은 나를 아시고 돌보시는 분입니다. 전능하신 그분의 손 아래 모든 염려의 짐을 맡겨 버립시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하신 주님의 초청을 들으셨다면 주저하지 말고 그 짐을 다 가지고 나오십시오.

어떻게 그 짐을 맡겨드릴 수 있을까요? 전능하신 하나님의 손 아래 모든 것 다 맡기고 겸손하게 기도합시다. 기도는 나의 짐을 하나님의 손에 부탁하며 넘겨드리는 일입니다. 염려를 다 맡기라고 하셨습니다. 기도한다면 더 이상 두려워하지 말고 불필요한 염려를 하지 맙시다. 베드로의 두번째 당부는,‘근신하라 깨어라’ 입니다.

4:7에서도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웠으니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기도하기 위하여 정신을 차리고 맑은 마음을 가지라는 말입니다. 만물의 마지막 뿐 아니라 한 해의 마지막에도 역시 기도하기 위하여 맑은 정신을 가지고 깨어 있어야 합니다.

2000년대의 첫 10년을 보내고 2011년을 앞두고 있습니다. 지나온 1년을 정리하고 혹은 10년을 돌아보며 기도하는 성도들이 되기 바랍니다. 기도로 깨어야 있고 말씀 속에 깨어있어야 합니다. 연말연시의 어수선한 분위기에 휩쓸려 정신없이 시간을 허비하지 말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한 해를 마감하고 새해를 맞이합시다.

기도하는 자녀들을 하나님이 돌아보십니다. 기도하기 위하여 깨어있는 영혼들의 커다란 부르짖음과 작은 신음처럼 흐느끼는 우리의 간절한 소망을 모두 듣고 계십니다. 1년 동안 고민하며 마음에 무거운 짐이 되었던 문제들을 계속하여 또 짊어지고 가지 말고 주님의 손 아래 믿음으로 맡겨드립시다.

우리의 기도는 하나님 말씀에 기초합니다. 능력 있는 기도의 에너지 원천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마지막 때를 살아가는 성도들이 깨어 있는 비결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과 함께 할 때 가능합니다. 말씀은 우리 믿음의 에너지요 영혼의 영양분입니다. 건강한 신앙의 원동력도 주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없는 기도, 말씀이 모자란 영혼, 말씀이 없는 신앙은 능력이 없습니다.

값비싼 자동차가 있는데 지금 당장 연료통에 기름이 없다던가 엔진을 점화시킬 베터리가 방전되었다면 무용지물입니다. 겉모양만 멋진 것으로 충분하지 않고 에너지와 힘이 있어야 실속이 있는 좋은 자동차입니다. 내 신앙은 어떤가요? 내 영혼의 연료통에 말씀에 기초한 기도의 기름이 충만하게 채워져 있습니까?

언제라도 시동을 걸면 스파크가 일어나고 성령에 감동된 강력한 영혼의 엔진이 말씀의 능력으로 ‘부릉’하고 시원하게 작동됩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이 모든 능력의 원동력입니다. 주의 말씀으로 내 영혼을 든든하게 채우시기 바랍니다.

내년에는 전 교인들이 성경읽기에 힘을 모아봅시다. 하나님의 말씀이 없이 영적인 싸움에서 이겨낼 수 없습니다. 바울이 에베소서에서 말씀한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은 성령의 검입니다(엡6:17). 로마 병정들이 사용하던 검은 방어용 무기이며 동시에 공격용 무기입니다. 검투사가 검을 장식용으로 차고 다니지 않습니다. 틈만 나면 검을 빼어 갈고 닦으며 훈련에 훈련을 거듭합니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군사들입니다.

여러분의 손에 성령의 검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져 있습니까? 혹시 장식용으로 들고 다니거나 교회 올 때만 사용하고 그것도 일주일에 한 번 설교시간에 펼쳐보는 장식용 검은 아닙니까? 군인의 손에 들린 검이 낯 설고 불편하기까지 한 것은 그 검과 친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어쩌다 한 번 들여다 보고 필요할 때 한 번 꺼내보는 것으로 그 검이 내 손에 익숙해질 수 있겠습니까? 사단이 우리를 향해 공격해 오면 이 말씀의 검으로 방어해야 하고 (예수님이 광야에서 사단을 말씀으로 물리치신 것처럼) 말씀의 검으로 사단의 급소를 일격에 찔러야 합니다.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했습니다. 기도로 깨어 있고 말씀으로 무장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무장되지 않는 영혼은 사자들이 득실거리는 밀림 속에 나홀로 버려진 어린 사슴이나 병들어 뒤처져 절룩거리는 얼룩말처럼 언제 사자들의 밥이 될지 모르는 불쌍한 신세가 됩니다.

세번째 당부는, ‘믿음을 굳게 하여 마귀를 대적하라’입니다. 어떻게 믿음을 굳게 합니까? ‘믿습니다’를 연발하면 저절로 강해질까요? 믿음은 들음에서 나고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는다(롬10:17)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성경 말씀을 사랑하고 가까이 하며 항상 묵상해야 하는 이유가 분명하지 않습니까?

수십년 교회를 출석해도 신앙이 자라지 않는다고 부끄러워하는 분이 있습니다. 신앙이 자라지 않는 그 이유는 성경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모태 신앙인들 중에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미지근한 신앙을 고민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성경을 아주 모르는 것도 아니고 어려서부터 듣고 배운 것은 있는데 뭔가 확실한 신앙고백이 없이 습관적으로 신앙생활을 합니다. 그런 분들에게 꼭 묻고 싶은 질문 하나 있습니다. 평생 성경을 완독한 경험이 있습니까?

세례도 받았고 직분도 얻었는데 아직 신구약 성경을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단 한 번도 통독하지 못한 분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고난이 찾아오고 시험과 유혹이 다가올 때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하여 그 어려운 상황에서 승리하는 힘을 얻습니다. 그러나 내 마음에, 내 심령 깊은 곳에 하나님의 말씀이 자리잡고 있지 않는 사람은 고난이 오면 세상적인 방식으로 해결하고 도피하려고 합니다.

믿는 자라도 유혹하여 넘어뜨리려고 두루 찾아다니는 마귀는 허약한 그리스도인이 누구인지 금방 알고 접근합니다. 그 사람의 약점이 무엇인지 잘 알아는 사단은 광명한 천사로 가장하여 접근하여 달콤한 말과 속임수로 허약한 그리스도인을 순식간에 넘어뜨립니다. 심지어 사단은 성경 말씀을 인용하면서 그럴듯 하게 우리의 마음을 떠봅니다. 광야에서 금식하며 기도하신 예수님에게 찾아온 사단은 성경말씀을 인용하여 예수님을 대단히 높이고 생각해주는 척 하며 무너뜨리려 했습니다.

성경을 잘 알지 못하고 어찌 사단의 감추어진 계략을 찾아내고 당해낼 수 있을까요?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도중에 넘어지고 무너지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너무 모르기 때문이며 또잘 못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저 나의 필요를 채워주고 힘들 때 위로가 되는 말씀만 좋아하고 힘들고 어려운 말씀, 실천하기 거북하고 부담되는 말씀은 슬며시 밀쳐두고 한쪽으로 치우쳐 편식을 하기 때문입니다. 신앙이 힘 있게 자라지 못하고 위기를 만나면 휘청거리는 것은 그 기초가 말씀으로 굳게 다져지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우리가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까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그 길을 지시하는 신앙 교과서입니다. 이 거룩한 말씀 안에 인생의 길에서 만나는 다양한 시험과 시련과 고난을 이기고 통과하는 비밀이 담겨있습니다.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딤후 3:15-17) 하였습니다. 성경이 교과서입니다.

교과서 한 권 제대로 통독하지 않고 기말고사 시험 치르러 가는 학생이 있다면 과연 옳은 일일까요? 선생님이 시험 범위가 교과서 전체라고 알려주셨는데 학생들이 자기 맘대로 재미있는 대목만 공부하고 어려운 곳 재미 없는 곳은 건너 뛰면 좋은 답안을 만들 수 있을까요? 또는 교과서는 제껴두고 참고서와 인터넷 자료들만 열심히 읽는 것도 정상적인 공부방식은 아닙니다. 여기 조금 저기 조금 구경하듯 성경을 읽는 것보다 성경 전체의 흐름과 맥을 잡아가며 그 속에 말씀하고 계시는 하나님의 뜻을 발견해 나가는 즐거움을 모든 교우들이 경험하기 바랍니다.

평소에 관심을 두지 않고 있던 짧은 편지 베드로전서를 읽어보니 이런 말씀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성경 어느 책 어떤 장을 읽더라도 거기에 나를 향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담겨있습니다. 고난을 당하는 성도일수록 더욱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아야 합니다. 세상에 있는 다른 형제들도 우리와 동일한 고난을 당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그 극심한 고난 중에도 믿음을 잃지 않고 담대한 것은 체력이 강해서가 아니며 정신력이 강한 것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 보기에 대단한 인물이 아니고 허약한 체력을 가진 사람일지라도 그 속에 계시는 그리스도, 그 사람이 믿고 의지하는 성령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시니 담대하게 고난을 이겨내고 있습니다.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불러 자녀 삼으신 은혜의 하나님께서 우리를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시려고 잠시 잠간 받는 고난을 넉넉히 이겨내도록 도우십니다. 그 능력이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옵니다. 모든 힘과 능력이 영원토록 하나님께 있다. 아멘.

베드로가 아끼고 신뢰하는 믿음의 형제 실루아노 편에 이 편지를 보내면서 이 말씀을 하나님의 은혜로 알고 말씀에 굳게 서라 당부합니다. 함께 성도로 부르심을 받고 택함을 받은 바벨론에 있는 교회와 믿음의 아들 마가도 문안한다고 대신 전하고 있습니다. 고난의 시기를 살아가는 베드로에게 이렇게 좋은 동역자들이 곁에 있습니다. 바벨론이란 구약성경에 나오는 고대 도시가 아니라 로마제국의 수도였던 로마를 상징하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권위에 대항하던 바벨론이 이제는 사라진 과거의 제국인 것처럼 지금 성도들을 핍박하고 고난을 당하게 하는 로마제국도 잠시 있다 사라질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교회는 영원히 무궁합니다. 로마제국 안에 세워져 가는 교회가 지금은 미약하지만 그 교회를 세우시고 붙들고 계시는 하나님의 능력은 무궁합니다. 지금의 고난과 시련은 잠간이지만 하나님의 교회는 주님 오실 그날까지 영원합니다. 베드로가 확신하며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바로 이것입니다.

나그네 여러분, ‘사랑의 입맞춤으로 서로 문안하라. 그리스도의 평강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든 이들에게 있기를 바란다’ 이것이 베드로의 마지막 당부이며 또 축복입니다. 고난 중에 누리는 그리스도의 평강이 여러분에게도 충만하기 바랍니다. 세상이 줄 수도 없고 빼앗을 수도 없는 그리스도의 평강이 2010년을 마무리 하며 새해를 맞이하는 우리 모든 성도들에게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바랍니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고난의 주를 바라보며 주님과 함께 넉넉히 감당하고 또 이겨내기 바랍니다.

 

 

 

기다리는 사람(눅 2:25-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