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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강절] 다른 이를 기다릴까요?(마 11:2-11)
   글쓴이 : 바이블넷     조회 : 3814    

다른 이를 기다릴까요?(마 11:2-11)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선입견이란 것은 참 무서운 것 같습니다.
차라리 아무 것도 모르는 것이 훨씬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선입견을 가지고 있을 것 같으면 좀처럼 자기 주장을 꺾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 결과 아주 사소한 문제를 가지고 서로 다투거나 아예 등을 돌리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선입견이란 꼭 개인적인 것만은 아닙니다. 때로는 집단적으로 어떤 선입견을 가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 좋은 예가 유대인들이 메시아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선입견일 것입니다. 대부분의 유대인들은 지금도 예수님을 메시아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때문에 그들은 지금도 애타게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지 않습니까?

요한복음에도 선입견을 가진 제자가 등장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1장 43절 이하의 기록을 보면 빌립이 친구 나다나엘에게 메시아를 만났다고 말하자 나다나엘이 반박한 것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가 뭐라고 반박했습니까?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요 1:46 상반절)
물론 악의를 가지고 그렇게 말한 것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나다나엘은 잘못된 선입견 때문에 감히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제한하려고 하는 실수를 범했습니다.

우리는 세례 요한에 대해서는 설명이 더 필요 없을 정도로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의 사명은 하나님께서 보내시는 메시아의 길을 예비하는 것이었고 그는 그 사명을 아주 잘 감당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많은 사람들로부터 메시아로 인정받을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요 1:20)고 분명히 밝혔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사람들 앞에서 분명히 증언했습니다.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요 1:29)
심지어 자신의 제자들이 예수님과 그 제자들에 대해서 질투하는 것을 보고 이렇게 말하지 않았습니까?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요 3:30)
자기 사명에 대해서 이보다 더 충실한 사람이 어디 또 있겠습니까?

그런데 그 세례 요한이 오늘 예수님께 자신의 제자들을 보내서 질문했습니다.
세례 요한에 대해서 좋은 인상을 가지고 있는 많은 사람들을 매우 당황하게 만드는 질문입니다.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마 11:3)
무슨 말입니까? 노골적으로 말해서 당신이 메시아인 줄 알았는데 마음에 의심이 생겼다는 것 아닙니까?

난처한 질문이 아닐 수 없습니다. 때문에 개혁자 칼빈 선생은 세례 요한이 의심한 것이 아니라 그의 제자들이 의심하고 있기 때문에 그들에게 믿음을 갖게 하기 위해서 직접 가서 물으라고 시켰을 것이라고 해석하고 있습니다. 전통적인 해석이며 또 많은 사람들의 지지를 받는 해석입니다. 물론 그렇게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보다는 다른 해석이 훨씬 더 설득력이 있습니다.
세례 요한은 옥에 갇혀 있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권력을 쥔 자들에게 바른 말을 한다는 것은 매우 위태로운 일입니다. 그는 동생의 아내를 빼앗은 헤롯 왕을 책망했기 때문에 미움을 사고 결국 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옥에 갇힌 그가 과연 어떤 심정이었겠습니까? 갇혀 보지 않은 사람은 그 심정을 짐작조차 할 수 없을 것입니다. 특히 광야에서 자유롭게 활동하던 그로서는 옥에 갇혀 지낸다는 것이 참으로 견디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런데 더 참기 어려웠던 것은 예수님께서 그의 기대를 저버리셨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세례 요한은 과연 무엇을 기대했습니까?
그의 기대는 다른 유대인들의 기대와 별로 다를 바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다시 말해서 그가 생각하는 메시아도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는 정치적인 메시아와 별로 다르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그는 그의 뒤에 오시는 메시아에 대해서 이렇게 소개했습니다.

"나는 너희로 회개하게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베풀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푸실 것이요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 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마 3:11~12)
그가 생각하는 메시아는 다만 심판하시는 분이었습니다. 그는 아쉽게도 최후 심판에 앞서서 십자가로 죄인들을 구원하시는 사랑의 하나님을 놓쳤습니다.

세례 요한은 헤롯의 손에 의해서 죽는 것이 두려웠던 것은 아닙니다.
애당초 죽을 각오를 하고 외쳤기 때문에 그는 결코 죽음이 두렵지 않았습니다. 다만 마땅히 일어나야 할 일들이 일어나지 않는 것이 답답했을 뿐입니다. 만약 그가 옥에 갇히지만 않았어도 당장 달려가서 따졌을지도 모릅니다.

로마 당국과 결탁하여 하나님의 백성들을 괴롭히고 있는 불의한 헤롯을 왜 심판하시지 않는지, 또한 창검과 말발굽으로 이스라엘을 지배하는 로마도 왜 심판하시지 않는지... 때가 무르익었음으로 이제는 판을 갈아엎으셔야 마땅한 것으로 그는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비겁하게 갈릴리로 물러가셨습니다. 혁명의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그로서는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묻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마 11:3 하반절)

그의 질문에는 만일 당신이 메시아가 아닐 것 같으면 다른 이를 기다리겠다는 뜻이 담겨져 있습니다.
예수님의 입장에서 보면 참으로 서운한 질문이요 또 어찌 보면 괘씸하게 생각할 수도 있는 질문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는 자상하게 대답해 주셨습니다.
"너희가 가서 듣고 보는 것을 요한에게 알리되 맹인이 보며 못 걷는 사람이 걸으며 나병 환자가 깨끗함을 받으며 못 듣는 자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마 11:4~5)

예수님께서 너희가 가서 듣고 보는 것을 요한에게 알리라고 하신 것을 보더라도 세례 요한이 어느 정도 의심하고 있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지 않습니까? 하여간 소문을 듣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소문을 듣기만 하고 보지 못할 것 같으면 그 믿음은 흔들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확신을 갖기 위해서는 예수님께서 행하신 일들을 직접 보고 듣는 경험이 중요합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어떤 일들을 행하셨습니까?
맹인을 보게 하셨습니다. 못 걷는 사람을 걷게 하셨습니다. 나병 환자가 깨끗함을 받았습니다. 못 듣는 자를 듣게 하셨습니다. 죽은 자를 살리셨습니다. 또한 가난한 자들에게 복음을 전파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행하신 이와 같은 일들은 예수님께서 어떤 분이신지 분명히 알려 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이야말로 하나님께서 보내신 메시아로 확신할 수 있게 만든다는 말입니다. 일찍이 선지자 이사야가 예언하지 않았습니까?

"그 때에 맹인의 눈이 밝을 것이며 못 듣는 사람의 귀가 열릴 것이며 그 때에 저는 자는 사슴 같이 뛸 것이며 말 못하는 자의 혀는 노래하리니"(사 35:5~6)
"주 여호와의 영이 내게 내리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르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며"(사 61:1)
그 예언의 말씀이 예수님에게서 성취되었습니다.

이어서 예수님께서 무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마 11:6)
무슨 말입니까? 예수님 때문에 실족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누구든지 예수님을 메시아로 영접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때문에 우리는 예수님을 영접하는 일에 장애가 될 수 있는 편견이나 고정 관념, 또는 선입견을 버려야 합니다. 또한 만약에 확신이 서지 않을 경우에는 조금도 지체하지 말고 주님께 질문해야 합니다. 여기서 질문하라는 것은 단순하게 묻고 대답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근거로 하여 예수님께서 하신 일을 직접 경험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성경을 보면 기다림의 사람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러나 그 기다림이란 하나님의 약속과 그 말씀에 근거하지 않을 것 같으면 기다림 그 자체로 끝날 수도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기다리다가 아무런 응답이 없을 것 같으면 지치게 마련입니다. 그렇게 되면 더 이상 앞으로 나갈 수 없게 됩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는 과연 어떤 자세로 기다려야 합니까? 먼저 우리도 믿음이 흔들릴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믿음이 흔들릴 경우 주저하지 말고 우리도 질문해야 합니다.

"주님이 정말 우리의 생명이시요 우리의 구원자이십니까?"
그렇게 질문했으면 또한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편견이나 선입견을 버리고 주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이 행하신 일들을 통해서 주님을 경험해야 합니다. 특히 나를 구원하신 주님의 십자가와 부활 사건을 경험해야 합니다. 주님은 오늘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주위에서 벌어지고 있는 악하고 추한 상황들 때문에 과연 주님이 이 역사의 주인이신지 의심하게 됩니까? 그러나 그럴수록 낙심하지 말고 더욱 주님을 간절히 찾아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께 물어야 합니다. 주님이 과연 우리의 구원자이신가 하는 것을... 우리가 가지고 있는 편견이나 고정 관념, 또는 선입견 따위를 다 버리고 다만 주님의 대답을 들어야 합니다. 그 주님을 직접 체험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비록 이 세상은 어둡고 캄캄하지만 생명의 빛으로 세상에 오신 주님을 직접 체험하고 그 주님이 다시 오실 것을 간절히 기다리며 주님이 맡기신 사명에 충성을 다함으로 말미암아 장차 천국에서 큰 자라는 칭찬을 듣게 되는 참으로 복된 여러분 모두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예수(요 15:12-17)
불량품(히 4:14-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