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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강절] 예수(요 15:12-17)
   글쓴이 : 바이블넷     조회 : 3638    

예수(요 15:12-17)

요즘 세상 사람들에게 기독교인에 대한 평판이 그다지 좋지 않고, 특별히 기자들에게 있어서 그 정도는 더욱 심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연히 한 신문기자의 블로그를 방문했다가 어떤 목사님을 소개하는 글을 읽고 좀 놀라웠습니다. ‘기자가 어떻게 목사를 칭찬할 수가 있지?’ 그는 천기원이라는 이름을 가진 목사를 ‘장엄한 사람’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면서 그를 소개하였습니다.

천목사는 저처럼 한 교회를 담임하는 평범한 목사가 아니라 중국에서 탈북자들을 돕는 사역을 감당하는 분이었는데, 그는 참으로 극적인 이력을 가진 분이었습니다. 원래 그는 목사가 아니라 사업가였는데, 새로운 사업을 모색하러 중국에 갔다가 그의 인생의 진로를 바꾸어 놓는 결정적인 일을 겪게 됩니다.

그는 북경을 거쳐서 두만 강가에 있는 도문까지 가게 되었습니다. 사진을 찍으려 하는 데 강물에서 무슨 신발 같은 것이 떠내려 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가까이 다가가보니 그것은 신발이 아니라 사람의 시체였습니다. 깜짝 놀라서 물어보니 ‘그것은 북한 사람의 시체인데 심심치 않게 떠내려 온다.’는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그는 북한과 접경한 몇몇 도시들을 다니면서 말로는 옮기기 힘든 북한 사람들, 특히 여성들과 아이들이 겪는 수치스러운 광경을 눈으로 보았습니다. 그런 참혹한 광경을 목격한 그는 이런 곳에는 다시는 오지 않게 해 달라고 하나님 앞에 기도를 드렸다고 합니다.

이듬해 가족들의 간청을 견디다 못한 그는 사업을 접고 목회자 수업을 쌓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는 4년 후인 1999년 목사가 된 그는 다시 중국을 방문합니다. 선교지를 탐방하기 위해서 였는데, 연길을 방문했다가 그 곳에서 그가 4년 전에 보았던 참혹한 북한주민이 겪는 고통을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그는 결국 두리하나선교회라고 하는 선교단체를 조직하게 됩니다. 북한 동포들의 탈북을 도와주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직접 탈북자들 12명을 인솔해서 중국과 몽골 국경을 넘다가 중국 공안에게 붙잡히고 맙니다. 2001년 12월의 일이었습니다.

그 때부터 또 다른 고생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는 영하 50인 추운 날씨 가운데서 차디찬 감옥에서 고생을 해야만 했습니다. 검사는 그를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습니다. ‘시킨 자가 누군가.’ ‘아무도 시키지 않았다. 내 민족이 마음 아파 돕는 것이다. 당신이 서울에서 대만 거지를 봤다고 하자. 그냥 지나치나? 도우면 죄가 되나?’ ‘비법월경자 납치죄, 3국 도피 방조죄, 불법종교활동죄! 장난하지 마라. 돕겠다는 마음? 믿지 않는다. 교사(敎唆)한 자가 누군가.’ ‘신(神)이 교사했다.’ 중국 검사와 천 목사는 꼬박 6개월 동안을 이와 같은 질문과 대답을 주고받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검사는 천 목사를 찾아 와서 이렇게 물었습니다. ‘이제 털어놔라. 진짜 누가 시켰나.’ ‘진짜다. 신이다.’ ‘어떻게 시켰나?’ ‘성경책에 적혀 있다. 고아, 과부, 나그네를 도우라고 돼있다. 탈북자들이 다 고아고 과부고 나그네다.’ ‘나도 그 책 읽어볼 수 있나?’ 순간 천 목사는 머리카락이 곤두섰습니다. ‘이 사람이 불법종교활동 함정 수사를 하는 것은 아닌가?’ 한참 고민하다가 그러라고 했습니다.

다행히 함정은 아니었고, 검사는 그에게 "You, good man"이라며 악수를 청하곤 헤어졌습니다. 죄수는 검사에게 명함 한 장을 인사치레로 건넸고, 그로부터 보름 후에 천 목사는 수갑을 차고 한국으로 추방되었습니다.

그런데 2002년 12월에 중국에서 한 통의 전화가 걸려 왔습니다. ‘나 그 검사입니다...’ 한국에 갈 일이 있다는 것입니다. 천 목사는 그를 자기 집으로 오게 하여서 한 주일을 함께 지냈습니다. 2003년 4월에 그가 다시 연락을 했습니다. 뉴질랜드로 유학을 가고 싶은데 좀 도와 달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천 목사는 ‘한국도 좋은 데 뭐하러 뉴질랜드로 가려 하느냐’며 충고를 하였습니다. 결국 그 검사는 고려대학교에 입학을 하였고 2년 내낸 천 목사의 집에서 생활을 하면서 그를 아버지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는 천 목사의 딸하고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반드시 목사가 되어야 한다고 약속을 하고 결혼을 승낙했는데, 이 점에서는 사위가 자신을 속였다고 천목사는 이야기를 한다는 것입니다.

그는 2012년까지는 중국에 들어 갈 수가 없게 되었지만. 지금도 두리하나선교회를 통해서 여전히 탈북자를 돕는 일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1999년부터 지금까지 약 700명의 탈북자를 중국과 러시아로부터 탈출시키는데 성공하였다고 합니다.

오늘 우리는 우리의 구세주이신 예수님의 탄생을 눈앞에 둔 대강절을 맞이하였습니다. 이 시기가 되면 우리들에게는 근본적인 기대감이 있습니다. 이번 성탄절에 오시는 주님은 우리들에게 무슨 선물을 가져 오실까? 하는 것입니다. 물론 그 선물이 어린 아이들이 성탄절 전날 밤에 양말을 걸어놓고 기다리는 그런 선물과는 다른 것이기는 하지만, 아무튼 우리들은 성탄절이 되면 ‘무엇인가 내 삶 속에 예수님 덕택에 좋아지는 것이 있겠지...’ 하는 기대감을 가지게 됩니다.

물론 우리들의 마음속에 예수님을 향한 이런 기대감을 가지는 것은 참 좋은 일입니다. 그러면서 한 편으로는 나도 예수처럼 누군가에게 기쁨을 주고 희망을 주는 사람이 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이 계절에 가지는 것은 어떨까요? 한번 생각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마태복음 25장에서 예수님은 이른바 ‘열 처녀의 비유’를 통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천국을 마치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가는 열 처녀와 같다는 것입니다. 언제 올는지 알 수 없는 신랑을 기다리다가 졸기도 하고 자기도 합니다. 그러다가 ‘보라 신랑이로다...’ 이런 소리가 나면 그들은 잠에서 깨어서 준비한 등에 불을 켜고 신랑을 맞으러 나가는 것입니다. 그 와중에서 등은 준비했지만, 기름을 미처 마련하지 못한 어리석은 처녀들을 결국 혼인잔치에 들어 갈 수가 없게 된다고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읽으면서 저는 그러한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결국 혼인잔치에 참여하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등불을 밝히는 일입니다. 열 처녀들이 혼인잔치를 기다리고 있었지만, 잔치에 들어 갈 수 있었던 것은 등불을 밝혔던 다섯 명의 처녀들뿐 이었습니다.

등불을 밝힌 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요? 혹시 신랑이 길을 못 찾을까봐 그래서 불을 켤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이것보다 더 그럴 듯한 이유가 있다면, 그것은 이제부터 ‘혼인잔치가 시작됩니다...’ 라고 하는 축제가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뜻이 더 강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나의 불은 아주 작고 희미하겠지만... 불과 불들이 모여지면 그것은 어둔 하늘을 밝히면 축제의 시작을 알리는 아름답고 감동적인 광경을 연출해 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예수가 이런 혼인잔치의 비유를 통해서 우리에게 일깨워주는 진리가 있다면, 그것은 우리의 기다림은 결코 가만히 앉아서 기다리는 수동적인 기다림은 아니라고 하는 것이지요. 물론 현실 생활에 얽매어서 졸기도 하고 잘 때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어떤 결정적인 순간이 임박하면 잠에서 깨어나고 그동안 준비한 등에 불을 밝히고 밖으로 나가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제 축제가 시작되었음을... 우리의 구세주이신 예수의 오심을 통해서 어둠의 세력은 물러가고 행복한 축제의 시작을 알리는 것이 바로 우리들의 몫이라는 말씀입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아직 예수가 오시려면 며칠 남아 있기는 하지만, 우리는 이제 잠에서 깨어나서 등불을 밝힐 준비를 할 때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축제의 시작을 알리는 등불을 준비한다는 것은 다시 말하면 그리스도인으로서의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면에서 오늘의 말씀은 시기적으로는 예수님이 십자가의 수난을 눈앞에 둔 시점에서 행하신 이른바 고별설교의 한 대목이기는 해도... 바로 여기에 그리스도인의 본래의 모습은 무엇인지... 우리가 밝혀야할 등불은 어떤 것인지를 잘 말하여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수는 오늘 우리들에게 이렇게 말씀을 하십니다.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예수님과 나와의 관계를 이것처럼 잘 설명해주는 대목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겉으로 보기에는 우리들이 주도권을 가진 것처럼 보입니다. 수많은 우리가 택할 수 있는 가능성 가운데서...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이 좋겠다... 이렇게 생각하면서 이곳을 선택한 것처럼... 다른 곳을 찾아 갈 수 도 있었겠지만... 그래도 여기가 좋을 것 같아서... 그래서 여기를 택한 것처럼 그렇게 보입니다. 그리고 이 신앙의 끈을 잡고 있는 것도 우리들인 것처럼 생각됩니다. 내가 주님의 손을 붙잡고 있는 것처럼.. 신앙의 여정이라는 것이 그렇게 생각 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속을 들어가 보면 결코 그런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것이 나와 예수님의 관계를 잘 설명해주는 대목입니다. 이미 우리가 하나님을 알기 이전에 하나님이 나를 먼저 알고 계셨습니다. 내가 하나님을 사랑하기 이전에 하나님께서 감당할 수 없는 풍성한 사랑을 우리들에게 베풀어 주셨습니다. 그것이 시작이지요. 겉으로 보기에는 내가 주님을 붙잡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그와는 정 반대입니다. 주님이 나를 붙잡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 손이라는 것이 얼마나 강인한 힘을 가지고 있는 지... 세상의 그 어느 것도 우리를 주님으로부터 떼어 놓을 수 있는 것은 아무데도 없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로마서 8장에서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롬8:35) 이렇게 감히 말을 할 수가 있었습니다. 내가 주님을 붙잡고 있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나를 붙잡고 계시기에... 그리고 주님은 한 번 붙잡은 그 사람을 결코 버리거나 포기하는 법이 없는 것을 알기에 이렇게 담대히 말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의 만남은 우연이 아니라 운명’이라는 유행가의 가사를 기억합니다. 내가 생명의 근원이신 예수를 향하여 그렇게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가 먼저 우리에게 그렇게 말씀하십니다. ‘너와 나의 만남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이것은 마치 운명과 같은 것이야...’ 우리들 그리스도인들이란 바로 이러한 믿음의 토대 위에 서 있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이렇듯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강한 사랑의 손길에 붙잡혀 있음을 기억하게 될 때에 우리는 어디서나 강하고 담대하고 용기 있는 삶을 살아 갈 수가 있습니다. 미국에서 활약하고 있는 최경주 선수를 잘 아실 것입니다. 지난해에 그가 한 대회에 참가를 하게 되었는데... 나흘 동안 경기를 하는 중에 사흘의 경기가 끝났을 때에 선두에 두타 뒤진 2등이었습니다. 우승에 대한 기대감이 있었는데... 아내가 전 날 밤에 그에게 바로 이 말씀을 내밀더라는 것입니다. ‘너희가 나를 택하여 세운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바로 이 말씀이었지요. ‘이 말씀을 의지해서 경기를 해 보세요.’

그는 그날 밤에 다른 생각은 접고 오직 그 말씀을 외우는 일에 집중을 했습니다. 그리고 경기에 나가서도 그 말씀만을 떠 올리며 경기를 하였습니다. 그런데 도무지 생각이 나지를 않더라는 것입니다. 그는 아예 스코아 계산은 캐디에게 맞기고 오로지 이 말씀만을 다시금 떠 올리기 위해서 애를 쓰며 경기에 임하였습니다. 거의 마지막 홀에 가서야 말씀이 생각나게 되었는데... 결국 그는 그 날 그는 오로지 그 말씀만을 생각하면서 경기를 하게 되었고, 우승을 차지하게 되었다는 것이지요. ‘만약에 그 말씀이 첫 홀부터 떠올랐더라면... 나는 온갖 생각을 다하면서 플레이를 했을 것이고... 많은 압박감에 시달리느라고 그런 결과는 얻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는 이렇게 고백을 하였습니다.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지금도 우리들에게는 어디서든지 나를 붙잡아 굳세게 세워 주시는 주님의 선한 손길이 함께 하고 있음을 믿으며... 이 믿음으로 살아가는 우리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이렇듯 우리가 주님께로부터 부르심을 받아서 세상을 살고 있다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있는 것도 주님은 우리에게 일깨워 주십니다. 앞부분의 말씀에서 주님은 우리들에게 이렇게 당부하십니다.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나니 너희가 나의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12-14절)

서로 사랑하라... 형제 사이에 베풀어지는 사랑... 요한공동체는 이것이 자기들에게 주신 주님의 마지막 부탁... 유언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것이 자기들의 공동체가 가지는 신비한 힘의 비결인 것이지요. 예수가 십자가 위에서 보여주셨던 너를 향한 희생적인 사랑... ‘우리는 이러한 예수님의 특별한 사랑을 받은 사람입니다.’ 이런 그들이 깨달은 주님의 특별한 사랑이 그들 공동체가 가진 생명력의 근원이 되었고, 이 사랑이 있는 한 그들 가운데는 빛으로 충만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사랑을 세상에 전하는 것... 심지어는 목숨까지도 바쳐가면서 전하는 것이 주님이 자기들에게 맡기신 소중한 사명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바로 여기에 우리가 오늘의 예수가 되는 비결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아직 내가 주님을 알지 못할 때에 나를 사랑하셨던... 그러한 사랑을 항상 마음 가운데 품고 있는 일입니다. 그리고 우리들도 그러한 사랑을 세상에 나가서 누군가에게 전하는 일입니다. 그러면 우리들은 나도 모르는 사이에 주님의 오심을 알리는... 주님이 오심을 통해서 영원한 축제가 시작되었음을 드러내는 작은 빛을 세상 사람들에게 드러내는 일을 훌륭하게 감당하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특별히 예수는 우리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만일 우리가 예수의 사랑으로 남을 사랑할 수 있다면... 그리고 그 사랑을 위하여 나의 목숨까지도 바칠 수가 있다면... 예수는 그를 ‘나의 친구’라고 불러 주겠다고 하셨습니다. 결국 오늘의 예수란 사랑을 위하여... 주님이 내게 베풀어 주셨던 그 사랑의 감동을 가슴에 간직하고 그것을 어떻게 해서든지 다른 사람과 나누려고 하는 사람... 그러한 사랑을 위해서라면 자기의 가장 소중한 것까지도 포기하고 버릴 수 있는 사람... 바로 그러한 사람을 우리는 오늘의 예수라고 감히 말할 수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이제 시작될 성탄절이라는 가장 기쁘고 영원한 축제의 시작을 알리기 위해서 밝혀야 할 등불이 있다면 그것은 다름 아닌 사랑의 등불이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오늘 그리스도 예수의 사랑으로 세상에서 만나는 단 한 사람이라도 사랑하려는 마음으로 세상을 살아간다면... 우리는 그 사람을 가리켜서 ‘오늘의 예수’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가 밝힌 사랑의 등불은 축제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 되는 것이지요. 물론 한 사람이 밝히는 불의 밝기야 아주 작고 희미한 것이 되겠지만... 그 작은 불들이 모일 때... 바로 그것이 온 세상을 밝히는 밝은 등불이 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요즈음 성탄절을 앞두고 사용되는 말 중에 ‘시크릿 산타’라는 말이 있다고 합니다. 감추어진 산타라고 할까요?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자기 스스로가 다른 삶에게 좋은 일을 해 주면서 산타 노릇을 한 번 해보는 것입니다.

2년 전 미국 미주리 주 세인트루이스의 한 중고품 상점에 한 여성이 중고품 담요를 사러 왔습니다. 난방비를 낼 수가 없어서 모포를 사러 온 것이지요. 그런데 그녀에게 한 낯선 사람이 다가갔습니다. 얼굴을 시커먼 선글래스로 가린 그는 그녀에게 100달러짜리 지폐 두 장을 내밀었습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당신도 능력이 생기면 다른 사람에게 선행을 베풀기만 하면 돼요.’ 그리고는 사라졌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그의 행동이 좀 황당하기는 해도 그녀에게는 세상은 살만한 곳이로구나... 하는 밝은 빛을 비추어 주는 행동이 되지 않았을까요?

이러한 시크릿 산타의 원조격인 래리 스투어트는 2007년에 암으로 세상을 떠날 때가지 26년 동안 무려 130만 달러(약 15억원)를 이웃 사랑을 위해서 사용했다고 합니다. 그에게도 이런 일을 하게 된 계기가 있었습니다. 직장을 잃고 힘들어하던 그가 무작정 식당에 들어가서 음식을 주문시켜서 먹고서는 지갑을 잃어버린 척 하였습니다. 이러한 그를 지켜보던 주방장이 ‘지갑에서 흐른 돈’이라며 그에게 20달러 지폐를 주었다고 합니다.

참 부끄럽기도 하고.. 가슴 따뜻해지는... 그의 가슴 속에 영원히 꺼질 수 없는 작은 등불이 켜지는 순간이었겠지요. 그 후에 어려움을 벗어나게 되면서 부터 그도 이런 사랑을 베푸는 일에 참여하게 되었다는 것이지요.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맞이하는 이번 성탄절이 이렇게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예수가 오시면 무엇인가 더 좋아지겠지... 이러한 막연한 기대감이나 기다림을 넘어 서는 일입니다. 한 번 그동안 예수를 통해서 우리가 받은 하나님의 사랑을 생각해보는 일입니다. 아무도 인생이 적자라고.. 나는 매일 같이 하나님께 손해만을 보면서 살아 왔다고 그렇게 말할 분들은 아무도 없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이제껏 적자 인생이라고 생각했던 분들도 하나님 앞에서 하나하나 다지다가 보면 지금가지 내가 받은 것이 얼마나 많고... 지금의 삶이 얼마나 풍성한지를 알게 될 것입니다. ‘너희가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 말씀 앞에서 우리들은 누구나 다 부자가 된 기분으로 세상을 살게 됩니다.

이제는 우리가 등불을 밝혀야 할 때인 것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이제 곧 주님이 오시고... 세상에서는 가장 큰 축제가 시작될 때인데... 그리스도인인 우리가 등불을 밝히지 않다면 누가 그 일을 하겠습니까? 상업적인 목적으로 휘황찬란한 불을 밝힌 백화점에 축제의 본질과 기쁨을 빼앗길 수는 없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물론 우리가 밝혀야할 등불은 사랑의 등불입니다. 물론 목숨가지도 바치는 사랑이라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우리가 만나는 이웃들에게 예수의 이름으로... 예수의 사랑으로 작은 사랑을 베풀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축제의 시작을 알리는 등불이 되는 것이고... 그러한 사랑을 실천 하는 사람이야 말로 오늘의 예수라고 우리는 감히 말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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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이를 기다릴까요?(마 11: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