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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강절] 위로(눅 2:25-35)
   글쓴이 : 바이블넷     조회 : 3423    

위로(눅 2:25-35)

오늘은 교회절기상으로 대림절입니다. 대림절을 대강절이나 혹은 강림절"이라고 합니다. 이 절기는 성탄절 전 4주전의 주일부터 성탄절 전야까지의 기간을 말합니다. 이 기간은 주님의 성탄을 기다리는 기간이며, 또한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는 기간이기도 합니다.

기독교의 특징은 기다림입니다. 복음의 특징은 기다림입니다. 신구약의 특징도 기다림에 있습니다. 구약은 창 3:15절에서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이 주제이며 신약은 그렇게 기다리던 구세주가 오셔서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를 지시고 승리하시고 승천하셔서 다시오시마 하신 약속을 믿고 기다리는 것이 주제입니다.

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하고 약속하신 메시야 구세주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사람의 인생은 기다림의 연속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에게나 그 무엇인가 미래의 희망적인 것들을 기다리는 기다림이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기다림이 있기 때문에 오늘을 살아낼 수 있습니다.

본문 말씀에 중에 "예루살렘에 시므온이라는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 사람은 의롭고 경건하고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라 성령이 그 위에 있더라"라고 했습니다. 본문에 시므온'이란 사람이 나오는데 이 사람은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사람"이었습니다.

시므온이란 사람이 사는 시대는 무엇보다도 이스라엘에 위로가 필요한 시대였습니다. 말라기 이후 400년 동안 중간사 시대에는 특별한 하나님의 계시가 없는 정말 답답하기 짞이 없는 영적 암흑의 시대였습니다. 그리고 그 긴 시대적 어두움에 지쳐갈 무렵이었습니다. 밤이 깊어 새벽이 가까이 오는 그런 시대였습니다

. 그러다보니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친고 지친 상태였습니다. 이 떄에야 말로 하나님의 위로가 필요했습니다. 아니 필요했다기보다 절실하고 절박했습니다 시므온은 시대의 필요를 알고 있었고 그것을 위해서 기도하며 기다리는 사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세상적인 다른 것을 기다린 것이 아닙니다. 세상적 즐거움이나 요행을 기다리지 않았습니다. 형통함이나 개인적인 행복을 기다린 것이 아닙니다. 그는 하나님의 위로가 이스라엘 위에 임하시기를 기다렸습니다. 주님께서 이스라엘을 위로해주실 그 날을 간절히 기다렸습니다. 주님께서 그 민족과 그 백성을 불쌍히 여기사 위로해 주시고 구원해 주실 그 날을 간절히 사모하고 기다렸습니다

시므온처럼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시므온이 기다린 위로는 바로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목적입니다. 죄중에 버려진 자의 구원과 고난당하는 자들을 위로해 주시기 위한 목적으로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이것을 시므온이 기다렸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위로 받고 싶을 때 사람을 찾고 술과 도박과 쾌락을 찾습니다.취미생활이나 강아지나 고양이를 통해서 위로 받고자 합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이 근본적으로 나를 위로해 주고, 내 인생을 회복시켜 주고, 내 인생의 근본문제를 해결해 줄 수는 없습니다.

지난 주에 우리는 북한군의 포격으로 사망한 군인들과 민간인들의 장례를 지켜보았습니다. 제대 한 달을 남겨놓고 전역하여 돌아오기를 기다리던 아들이 포단에 맞아서 갈기갈기 찢어진 시신으로 돌아왔는데 누가, 무엇으로 그 부모형제의 슬픔을 위로 할 수 있겠습니까? 용감한 군인이 되겠다고 해병대에 자원입대한 지 이제 막 1달 밖에 안되었는데 사망한 일병짜리의 부모형제는 또 어쩌겠습니까? 돈 벌기 위해서 군인 막사를 건축하기 위해 연평도에 들어갔다가 죽어나온 그 사람들과 그 부모형제들은 누가 위로해주겠습니까? 어찌 사람의 세치 혀로 그들을 위로한다고 위로가 되겠습니까? 그러나 목자 되신 예수님께서는 우리 인생들의 진정한 위로자가 될 수 있을 줄로 믿습니다.

이 땅에 육신을 입고 오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는 우리 각자의 인생과 민족과 세계를 진정으로 위로해 주실 수 있습니다. 그 분은 우리의 슬픔과 질고와 허물을 짊어지시고 십자가를 지셨기 때문입니다(사 53장). 그 분은 상한 갈대를 꺽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기를 심판하여 이길 때까지 하시기 때문입니다(마 12:20).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의 말씀이 이뤄질 때까지,주님이 다시 오실 때까지 서로 위로하며 기다리시는 성도님들이 되셔야 할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기다린다"는 말인 '프로스데코마이'는 몇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첫째는 오늘 본문의 해석처럼 "기다린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을 기다리고 주님을 기다리고 하나님 나라를 기다리고 꿈과 소원이 이루어지기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잘 기다리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둘째는 "찾는다"는 뜻으로 사용됩니다. 날 구원하신 주님을 찾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부지런히 찾고 진리를 찾고 선한 방법과 의로운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구원받을 영혼, 예비된 영혼, 함께 동역할 동역자들을 찾아야 합니다.

셋째는 "용납한다. 받아들인다. 환영한다. 영접한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아무리 부어주시는 은혜도 용납하지 아니하고 받아들이지 아니하면 소용이 없습니다. 환영하고 영접하는 자라야 받을 수 있고 누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주인공인 시므온의 모범에서 어떻게 기다려야 하는 가를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첫째로는 하나님의 위로를 기다리는 사람이엇던 시므온은 오늘 말씀에서 증언해주는 것과 같이 "예루살렘에 살고 있으면서 의롭고 경건한 생활을 했습니다"(25절)

우리가 주님의 위로를 기다린다고 해서 아무렇게나 누워서 안일하게 시간만 보내서는 안됩니다. 주님의 위로와 축복이 임할 수 있는 그릇을 준비하면서 기다려야 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그 사람의 그릇이 큰 그릇이든지, 작은 그릇이든지, 잘 생긴 그릇이든지, 못 생긴 그릇이든지 그것은 따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주의 위로와 축복을 주실 때에 한 가지 보시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그 그릇이 깨끗한 그릇인가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디모데 후서 2:20,21절에 보면 금 그릇, 은그릇, 나무그릇, 질그릇, 귀히 쓰이는 그릇, 천히 쓰이는 그릇이 있는데 누구든지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이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예비함이 되리라고 하였습니다.

곧 인간에 대해서는 "의롭고" 하나님께 대해서는 "경건했던" 사람이 바로 시므온이었습니다. 시므온은 시대가 아무리 혼탁하고 타락하고 죄악 되었지만 거기에 휩쓸리지 않았습니다. 시대와 타협하지 않았습니다. 시대풍조를 따라 살지 않았습니다. 시므온은 세상과 구별된 생활, 즉 의로운 삶을 살았습니다. 경건한 삶을 살았습니다. "의로움과 경건"은 따로 국밥이 아니라 이 둘은 항상 병행해야 하는 것입니다. 의로운 사람은 경건하고 경건한 사람은 또한 의로울 수 밖에 없습니다.

찬송가 가사 중에 "언제 주님 다시 오실는지 아는 이가 없으니, 등 밝히고 너는 깨어 있어 주를 반겨 맞아라. 주 안에서 우리 몸과 맘이 깨끗하게 되어서, 주 예수님 다시 오실 때에 모두 기쁨으로 맞아라"

둘째로 하나님의 위로를 기다리는 사람이었던 시므온은 "성령이 그 위에 있는"사람이었다고 증언해주고 있습니다. 성령꼐서 그 위에 머물러 일하시기에 합당한 사람이었습니다.
시므온, 그는 성령이 그 위에 있었습니다. 그는 성령의 지시를 받았습니다. 성령을 통하여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 죽지아니하리라"는 지시를 받았습니다. 그 생전에 그리스도를 보게 되리라는 성령의 지시를 받았습니다.
그는 성령의 감동(인도)으로 성전에 들어 갔습니다. 곧 예수님의 부모가 결례를 위해 성전에 오던 때에 맞춰 성전에 들어가게 하여 아기 예수를 보게 하였고 이 아기를 보는 순간에 성령께서 그가 곧 그리스도이심을 알도록 감동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힘들고 어려워도 아무렇게나 막가는대로 살지 아니하고, 의롭고 경건하게 살고자 애를 쓰는 자들에게 성령의 기름부으심의 축복을 허락해 주시는 줄로 믿습니다. 자신의 삶이 아무리 꼬이고 잘 안 풀려도 입술로 범죄치 않고 믿음의 길을 가고자 몸부림치는 사람에게 성령의 감동하심을 허락하사 영적 세계를 분별하고 그 시대를 꿰뚫어 보는 통찰력을 갖게 하십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힘들고 어렵기 때문에 시대를 탓하며 환경을 탓하며 술과 정욕으로 자신을 더럽히며 인생을 아무렇게나 사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면서 막연히 어떻게 되겠지? 국가가 어떻게 해 주겠지? 대통령이 무슨 대책을 세우겠지? 부모님이 어떻게 해 주시겠지? 캥거루족이 되어서 빈둥거리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기다리는 자의 올바른 자세가 아닙니다. 우리는 위로의 성령님께서 내게 임재하셔서 내 갈길을 보여 주시고, 내 인생길을 한 걸음 한 걸음 인도해 주시도록, 죄를 멀리하고 의롭고 경건하게 살아가야 할 줄을 믿습니다.

성탄절을 상업적으로 쾌락적으로 맞이하는 세상 사람들과 같이 하지 아니하고 참으로 하나님의 위로가 모든 사람들과 민족들과 열방에 임하는 그런 성탄절을 맞이해야 하겠습니다

 

영광 돌립시다(사 2:5)
예수(요 15:12-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