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강절
성탄절
송구영신
사순절
부활절
성령강림
감사주일
 
 
 
 
   
HOME < 설교 < 절기
 
  대강절
 
  [대강절] 기다림(애 3:25-26)
   글쓴이 : 바이블넷     조회 : 9004    

기다림(애 3:25-26)

성경은 메시아의 초림과 재림에 대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선지자들을 통하여 작은 땅 베들레헴에 메시아가 오실 것이라는 예언이 있었습니다. 그 예언들은 지금으로부터 2천 년 전 어느 날 그 예언이 약속된 그대로 성취되었습니다. 이것을 신학적인 용어로 표현하면 초림이라고 합니다.
이 땅에 오신 메시아, 예수께서는 33년간의 사시면서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의 죽으심으로 인류를 향하신 하나님의 구원을 이루어 내셨습니다. 이 땅에서 이루실 일들을 다 이루신 예수께서는 부활하신 후에 제자들이 보는 앞에서 홀연히 하늘로 오라가 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나머지 사역을 위임하시고 하늘로 올라가셨습니다.
하늘로 오라 가시면서 하나의 명령을 하십니다. 그리고 천사들의 통하여 하나의 약속을 주십니다.

사도행전1장에서 그 명령과 약속을 확인해 보겠습니다.
(행 1:7-11) 『[7] 이르시되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가 알 바 아니요 [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9] 이 말씀을 마치시고 그들이 보는데 올려져 가시니 구름이 그를 가리어 보이지 않게 하더라 [10] 올라가실 때에 제자들이 자세히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데 흰 옷 입은 두 사람이 그들 곁에 서서 [11] 이르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

주님의 증인이 되라는 사명을 주셨고, 그리고 다시 오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언제 오실지 그때는 아무도 모르지만 약속하신대로 반드시 다시 오실 것은 분명합니다. 예언되고, 예언된 그대로 메시아이신 예수께서 이 땅에 사람의 몸을 입으시고 오신 초림 사건은 하늘로 올라가시면서 약속하신 재림의 약속에 대한 증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신다고 약속하신 초림의 약속이 그대로 이루어진 것처럼 다시 오신다는 재림의 약속 또한 그대로 이루어 질것입니다.

초림 시에 예언된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오실 메시아를 기다린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 대표적인 사람이 시므온과 안나 입니다. 그들은 성령을 통하여 약속을 받은 사람들이고 , 메시아가 곧 오신다는 약속을 분명히 믿고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오실 메시아를 어떻게 기다려야하는지도 알고 있었고 그래서 그들은 준비된 모습으로 메시아를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이 땅에 오신 메시아를 만났습니다. 그것은 감격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시므온과 안나가 주님의 초림을 어떻게 기다렸는지를 살펴보면 다시 오실 예수그리스도를 기다리며 살아가는 우리들이 어떻게 주님을 기다리며 살아야하는지를 배울 수가 있습니다. 어떻게 기다릴까? 그 말씀을 나누어 보려고 합니다.

오늘 본문 예레미야애가 3장 25-26절은 기다림에 대한 말씀입니다.
긍극적으로는 다시 오실 예수그리스도를 기다리고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기다림이 무엇인지, 어떻게 기다려야하는지를 알려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대림의 계절에 평화의 왕으로 오신 예수그리스도께서 오늘 내 삶의 자리로 다가오실 때에 어떤 마음으로 맞이해 드려야하는지를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예레미야애가는 5편의 시 모음집입니다. 저자는 물론 예레미야 선지자입니다..
남 왕국 유다 말기와 바벨론 포로를 전후하여 경악스럽고 수치스러운 하나님의 백성들의 역사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시 모음입니다.
바닥까지 타락해 버린 선민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으로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이었던 성전은 무참히 파괴되었습니다. 성전이 있었던 거룩한 도성 예루살렘도 처참하게 파괴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살육을 당하고, 많은 사람들이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이와 같은 예루살렘 대 함락 사건을 온몸으로 체험하면서 그 폐허의 현장에서 눈물로 애통하며 쓴 시가 예레미야애가입니다.
예루살렘 함락에 대하여 기술한 책들은 여러 권 있습니다. (열왕기하, 역대하, 예레미야, 에스겔)
다른 역사책들과 예레미야애가서를 비교했을 때, 다른 점이 있습니다. 다른 책에 비해 애가에는 저자의 감정이 잘 드러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의 멸망을 바라보며 애통해하는 예레미야 선지자의 모습, 그러면서도 끝까지 소망을 버리지 않는 예레미야 선지자의 신앙 감정이 그대로 표현되어 지고 있습니다.
예레미야애가를 읽다보면 처참함 속에서, 절망적 상황 속에서 애통해하는 모습, 그 속에서도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하나님의 구원의 손길에 대하여 확신하는 예레미야의 모습이 그대로 그려지는 느낌을 받게됩니다.

이러한 배경을 염두에 두고 오늘 본문 예레미야애가 3장 25-26절을 다시한번 다함께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애 3:25-26) 『[25] 기다리는 자들에게나 구하는 영혼들에게 여호와는 선하시도다 [26] 사람이 여호와의 구원을 바라고 잠잠히 기디림이 좋도다』

1. 기다리는 자에게나 구하는 영혼들에게 여호와는 선하시도다.(25)
(표) 주님은 주님을 기다리는 사람이나 찾는 사람에게 복을 주신다.
주님을 기다리는 사람들에게는 좋은 결과가 기다리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믿음의 선진들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기다림의 과정을 통과한 사람들입니다.
노아는 120년을 한결같이 기다렸습니다.
요셉은 보디발의 종으로 11년을 그리고도 감옥에서 2년을 더 기다려야했습니다.
모세는 미디안광야에서 기다림의 40년을 보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과 하나님의 때를 기다려야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기다림이라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라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기다림은 어렵습니다.

1)기다림이 어려운 것은 장애물이 있기 때문입니다.
출애굽후 40년의 광야 길은 기다림의 과정입니다.
-고통 : 그곳에는 추위와 무더위, 그리고 배고픔과 목마름의 고통이 있는 곳입니다.
-두려움: 광야길이라는 자체가 두려움의 대상입니다. 척박한 환경과 언제 끝이 날지 모르는 불확실성은 두려움을 더해줍니다. 그곳은 어제 공격해올지 모르는 대적들과 사나운 맹수들이 널려있는 곳입니다.
-유혹: 이러한 고통과 두려움은 다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들게합니다.
(출 16:3) 『우리가 애굽 땅에서 고기 가마 곁에 앉아 있던 때와 떡을 배불리 먹던 때에 여호와의 손에 죽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너희가 이 광야로 우리를 인도해 내어 이 온 회중이 주려 죽게 하는도다』(엘림과 시내산 사이 신광야에서)

2)기다림이 어려운 또 하나의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기다림의 가치를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기다림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요즘같이 스피드를 요구하는 시대에는 더더욱 기다림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영미권의 대표적인 현대문학가의 한사람인 <수 몽크 키드>는 기다림의 가치가 절하되는 원인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에서 나타나는 문화에서 그 원인을 찾습니다.
이 시대는 <기다림>을 무가치하게 하는 <문화적 신화>가 있는 시대라는 것입니다.

<이 시대에 나타나는 대표적인 문화적 신화 3가지>
-즉석사회:
이 시대는 즉석이라면 혹하는 시대라고 합니다. 세상은 어지러운 속도록 빠르게 움직이고, 컴퓨터는 즉답을 내어 놓습니다. 사진은 눈앞에서 현상됩니다. 위성은 어디로나 전파를 보내 이억 만리의 장면도 실시간에 우리안방에 뜹니다. 인스탄드 커피, 일회용기저기, 빠른 차선, 빠른우편, 페스트푸드점 빠를수록 좋은 세상입니다.
상품광고에도 즉석이라는 단어를 붙이면 훨씬 더 잘 팔린다고 합니다. 이러한 <즉석이라는 문화적 신화>는 기다림의 가치를 잃어버리게 한다는 것입니다.

-지름길 종교:
번잡스럽지 않고, 간편한 은혜를 쉬운 복을 추구하는 종교적 행태들을 망라한 말입니다. 본훼퍼 이런 것을 ‘값싼 은혜’라고 표현했습니다. 귀찬케 하지 않고, 예수를 닮아가려는 영적 몸부림도 필요 없는, 치열하게 사랑하고, 헌신하고, 희생하는 과정도 없는 하나님의 나라를 추구하는 교회들을 의미하기도합니다. 이러한 종교적 행태를 지름길 종교라고 합니다.
이러한 <지름길 종교라는 문화적 신화>가 기다림의 가치를 파괴시킨다는 것입니다.

-속전 속결 중독증:
중독에는 물질 중독과 과정중독이 있습니다. 물질중독은 섭취하는 물질로부터 오는 중독이고, 과정중동은 사람의 행동 과정에서 발생하는 중독입니다.
중독에 관하여 깊이연구한 학자로 잘 알려진 <앤 셰프> 는 과정중독에 대하여 이렇게 설명합니다.
“인간이 내적 고통이나, 내적 성장을 피하기 위해 어떤 구체적인 일련의 행동에 빠질 때 ‘과정 중독’이 생긴다”
테레비전 시청, 달리기, 돈의 축척, 일, 섹스 등 인간 활동의 거의 모든 활동을 중독의 동인이 될 수 있다고 합니다. <중독자가 된 사회>
무엇이든지 그곳에 빠지면 중속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쉽고 빠른 길을 찾는 것도 중독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외국에서 가장 알려진 우리나라말이 빨리빨리라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빠리빨리하지 않으면 손해나는 것이 많이 있습니다. 빨리빨리가 다 나쁜 것은 아니지만 모든 것을 속전 속결로 해치워야 만족해하는 습성은 속적 속결 중독증에 쉽게 잠식될 수 있는 것입니다. 특히 신앙과 삶의 문제에 있어서 쉽고 빠른 길만 강박적으로 찾으려고 하는, 속전 속결 중독증은 우리를 기다림의 은혜에서 멀어지게 하기에 충분 것입니다.

이러한 일련의 문제들 때문에 기다림은 정말 쉽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기다림의 가치를 알면 기다림이 쉬워집니다. 기다림의 은혜를 알면 기다림은 생각보다 힘들지 않습니다.
여러분! 기다림에는 우리가 미처 상상할 수 없는 놀라운 은혜가 숨겨져 있음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예화>
올챙이를 좋아하는 어린 소녀가 있었습니다. 소녀는 가끔 할머니 집에 놀러가는 것을 아주 좋아했습니다. 왜냐하면 할머니 집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공원이 있었는데, 그 소녀는 그곳을 좋아했고, 그곳을 할머니와 놀러가는 것을 좋아했기 때문입니다. 그 날도 할머니와 공원을 산책하게 되었습니다. 그날은 할머니가 손을 잡으며 다른 쪽으로 가면서 말했습니다. “오늘은 먼 길로 돌아서 가자” 먼 길로? 그 말은 소녀의 귀에 저주처럼 들렸습니다. 빠리 공원에가서 놀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한참 가다보니 도랑이 하나 나왔습니다. 도랑에서 할머니가 허리를 굽히더니 올챙이 한 마리를 잡아 병에 넣어 주시면서 말했습니다. “먼 길로 돌아오길 잘했지?” “지름길에는 올챙이가 없거든.”

기다림에는 정말 좋은 것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예레미야는 참담하지만 고통스럽지만 막막하지만 기다리자고 말씀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기다리는 자에게나 구하는 영혼들에게 여호와는 선하시도다.(25)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기다림을 통해서 우리를 만들어 가십니다.
-우리를 자라게 합니다. : 우리의 몸을 자라게 하고, 정신을 자라게 하고, 믿음을 자라게 하십니다.
-우리를 강하게 합니다.: 짧은 시간에도 많이 자라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강함은 짧은 시간을 통해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오랜 시간과, 오랜 기다림을 통하여 우리를 강하게 만드십니다.
-하나님과 친밀하게 하십니다. : 빨리 끓는 물이 빨리 식듯이, 빨리 가까워진 관계는 그만 큼 빨리 멀어 질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힘들고, 어려고, 긴 과정을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하시고, 깊이 있는 친밀감을 만들어 가십니다.

아브라함은 기다리지 못하여 이스마엘을 나았습니다. 아브라함은 기다림으로 이삭을 낳았습니다. 기다림은 이삭이고, 기다리지 못함은 이스마엘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않되 것입니다.

2. 사람이 여호와의 구원을 바라고 잠잠히 기디림이 좋도다(26)
어떻게 , 어떤 자세로 기다려야하는가를 말씀해 주고 있는 구절입니다.

1)여호와의 구원을 바라고...
“바라고”라는 단어는 기대감을 가지라는 뜻입니다.
기대가 없는 기다림은 무료합니다. 고통스럽습니다. 무의미합니다.

<아기예수를 기다린 사람 시므온>
(눅 2:26-27) 『[26] 그가 주의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는 죽지 아니하리라 하는 성령의 지시를 받았더니 [27] 성령의 감동으로 성전에 들어가매 마침 부모가 율법의 관례대로 행하고자 하여 그 아기 예수를 데리고 오는지라』

그는 성령을 통하여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는 죽지아니하리라는 약속을 받았습니다. 약속에대한 확신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시므온은 그에게 주신 약속에 대한 확실한 기대감이 있었습니다.

시므온에게 약속에 대한 기대감은 살아가는 의미였습니다. 소망이었습니다. 비전이었고 꿈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기대감을 져버리지 않으셨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약속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제 기대감을 가지고 기다리면 됩니다.
약속 있는 소망, 약속 있는 비전 약속 있는 꿈이 있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하나님의 선하심을 보여주십니다. 아멘

2)잠잠히 기다림이 좋도다.
나를 내려놓으라는 말씀입니다.
내 의지를 내려놓고, 내 능력을 내려놓고, 내 지혜를 내려놓고 기다려야합니다.
기다림은 고통이고, 두려움이고, 유혹이라고 했습니다. 나를 내려놓지 않으면 기다림은 고통이 됩니다. 두려움이 됩니다. 나를 내려놓지 않으면 우리는 유혹에서 견뎌낼 수가 없습니다.

<안나>
(눅 2:36-37) 『[36] 또 아셀 지파 바누엘의 딸 안나라 하는 선지자가 있어 나이가 매우 많았더라 그가 결혼한 후 일곱 해 동안 남편과 함께 살다가 [37] 과부가 되고 팔십사 세가 되었더라 이 사람이 성전을 떠나지 아니하고 주야로 금식하며 기도함으로 섬기더니』

그는 84세에 남편과 사별하고, 모든 것을 내려놓고 성전에서 금식하며 기도하면서 메시아를 기다렸습니다. 성전을 떠나지 아니하였다고 합니다. 나를 다 하나님 앞에 내려놓은 것입니다
말씀을 준비하면서 내려놓음을 가장 쉽고 분명하게 설명해주는 글이 생각났습니다. 오래 동안 베스트셀러의 자리를 차지했던 몽골선교사 이용규선교사님의 간증집인 “내려놓음”에 나오는 글입니다.

“아들 동현이가 두 살 때 함께 장난감 가게에 간일이 있었다. 동현이는 자신이 좋아하는 버즈 장난감을 두 팔로 꼭 움켜 쥔채 가개를 나오려고 했다. 그러나 장난감을 가지기 위해서는 그것을 계산대에 올려 점원이 바코드판독기로 잃게 해야 했다. 그래서 점원이 동연이의 팔에서 장난감을 넘겨받으려고 했을 때 동연이는 울며 장난감을 꼭 쥔 채 내려놓으려 하지 않았다. 장난감이 진정한 자기 것이 되기 위해서는 잠시 계산대에 그것을 내려 놓아야한다는 사실을 몰랐던 것이다.”

잠잠히 기다림이 좋도다. 내려놓고 기다리는 기다림은 쉽고 편하고 행복합니다. 기다림이 힘들고, 고통스러운 것은 내려놓음이 없기 때문이다.
다 내려 놓아야하지만, 무엇보다도 우리의 욕심을 내려놓아야합니다. 무엇인가에 욕심을 가지면 다른 것은 보이지 않습니다.

여러분! 주님을 기다리는 대림의 계절에, 놀라운 기다림의 은혜가 여러분과 가장에 충만하기를 축복합니다.


새 천년의 시작(눅 2:21-39)
더딜지라도 기다리라(합 2: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