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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의 죄, 또다른 죄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12575    


 금세기에 들어서면서 이상 기후, 지진, 화산 폭발, 홍수, 화재 등 천재지변이 지구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으며, 지금도 그런 재난이 곳곳에서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다. 그런가 하면 급속도로 발전한 첨단과학 기술이 안방에까지 침투하여 우리들의 삶의 형태를 급격하게 변화시키고 있으나, 우리들의 삶의 질은 그에 따라가지 못하고 있으며, 급변하는 문화와 사람들의 생활 사이에 엄청난 간격이 생겨 사회적으로 여러 가지 문제가 대두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모든 분야에서 기존의 질서가 무너지고 있으며, 사회의 기초가 되는 가정의 질서까지도 무너지고 있는 형편이다. 곳곳에서 양심의 부재가 노출되고 있으며 죄는 습관이 되고 중독이 되어 가고 있다. 하나의 죄는 또 다른 죄를 불러일으키는 것을 볼 때, 죄는 사람들을 죄의 노예로 만드는 힘을 갖고 있는 것 같다. 성경에서 가인이 아벨을 살해한 후에, 하나님께서 가인에게 그의 동생이 어디 있는지를 물었을 때 그는 거짓말을 하여야 된다고 느꼈다. 사람들은 때때로 더 작은 죄를 가리기 위해 더 큰 죄를 짓는 것 같다. 죄를 범한 사람은 현실을 직면하지 않으려 하며, 삶의 거친 면들과 죄의 결과들을 절실하게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칼 메닝거는 죄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은 자신의 잘못된 행위에 대한 고통스러운 인식을 지우는 한 가지 방법이라고 하였다. 우리가 죄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것은 자신이 행한 잘못된 점은 인정하면서도 그 잘못에 대해서는 책임지기를 거부하는 태도라고 할 수 있다. “누가 너의 벗었음을 네게 고하였느냐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 명한 그 나무 실과를 네가 먹었느냐?”(창 3:11)라고 하나님께서 물으셨을 때, 아담은 책임을 전가함으로써 이렇게 응답하였다. “여자 그가 그 나무 실과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창 3:12). 아담의 즉각적인 응답은 개인적인 책임을 부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는 하나님께서 주신 하와가 유혹했기 때문에 선악나무 열매를 따먹었다고 변명했다. 그러자 그 여자는 남편의 본보기를 즉시 배워 또 이렇게 변명하였다. “뱀이 나를 꾀므로 내가 먹었나이다”(창 3:13). 이렇게 서로 변명을 늘어놓았으나, 하나님의 심판은 아담과 하와와 뱀 모두에게 내려졌으며, 비록 뱀에 의해서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짓게 되었다고 하여도 그들은 그 책임을 면치 못한다는 사리이다. 그래서 죄인과 유혹자 모두 처벌을 받았다. 책임을 자신으로부터 다른 사람에게 전가하려는 시도는 흔히 있는 습관일 수도 있다. 우리가 자신의 죄를 부정할 때 밑바닥에 깔려 있는 문제는 자기 기만일 수도 있다.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렘 17:9)라고 말씀하신다. 예수님은 자기 기만이 얼마나 어이없게 나아갈 수 있는가를 지적하고 계신다. 우리가 계속하여 죄를 지으면서 하나님의 경고와 정죄를 거절할 때에는 양심의 가책이 점점 줄어들게 될 것이다. 죄는 무감각을 가져온다는 사실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우리가 잘못했을 때 처음에는 민감하지만, 그 결과로 일어나는 영향은 우리가 더 이상 말씀과 성령에 의해 감동되지 않음을 경험할 것이다. 심지어 엄청난 죄들도 아무런 양심의 가책 없이 저지를 수 있게 될 것이다. 죄의 결과는 점점 증가되는 자기 중심성일 수도 있다. 왜냐하면 죄는 여러 가지 방식으로 습관처럼 굳어져 고립화되기 때문이다. 죄는 계속적이며 죄의 주변에는 늘 만족하지 못하는 특성이 있으며, 완전한 만족이란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볼 수 있다. 끝으로 인간들의 죄는 습관적으로 마약을 복용하는 것처럼, 담배를 피워 니코틴 중독이 되는 것처럼, 양심의 가책을 받지 않고, 죄를 짓는 것이 더욱 손쉬워지게 될 것이다.

?동행하시는 하나님?, 손수연


양심은 속일 수 없다
회피하려는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