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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약개론 - 제6장 오경 문서설의 역사
   글쓴이 : 최고관리자     조회 : 10309    

제6장 오경 문서설의 역사

스피노자는 1670년에 Tractatus Theoligico-Potitcus에서 오경이 모세에 의해 쓰여졌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주장하면서 그 근거로써 3인칭 “그”를 제시하였다. 모세가 썼다면 “나”라고 했어야만 했다. 또한 모세는 신명기 33장에 있는 바와 같이 자신의 죽음을 스스로 기록할 수 없었다. 따라서 에스라가 오경을 마지막으로 편집한 자라고 스피노자는 주장하였다. 이 제안이 그의 생전에는 거의 무시되었지만 19세기 후반에 들어와서 그라프, 쿠에넨, 벨하우젠에 의해 문서설을 결정짓는데 괄목할 만한 기여를 하였다).

1. 초기의 연구진행

오경이 다양한 문서들로 구성되었다는 것은 창세기 1장에는 엘로힘(하나님)만이 나타나고, 2장에는 여호와로 언급되어진다. 『모세가 창세기를 만들 때 사용한 것으로 보이는 원래의 메모들에 대한 추측들』에서 그는 두 가지의 다른 기사를 제공하는 두 개의 다른 기록들을 자료로 사용한 것으로 추측이 된다고 설명하였다.

아이히혼(Johann Gottfried Eichhorn)이 1780-1783년에 출판한『구약서론』(Einleitnng)으로 넘어가서 창세기 전체와 출애굽기의 첫 두장(모세가 불붙는 가시덤불에서 하나님과 대화를 한데까지)을 여호와 문서(J)와 엘로힘 문서(E)로 나누었다. 그는 서로 다른 “평행기사들”과 “중복들”(예;홍수에 대한 “두 기사”)을 두 가지의 자료로 연결시키고 각각의 특징들을 분리시켜 내었다. 처음에는 모세가 이 “모세 이전”의 기록된 자료들을 편집하는 일을 했다고 말했지만, 후에는 그의 『구약서론』에서 오경이 모세 시대 이후에 기록된 것이라면 그 당시 점점 유행해 가던 견해에 동조하게 되었다. 이리하여 J-E의 구분이 오경 전체에 미치게 되었다.

다음에 더 베테(Wilhelm M.L. De Wette)의 신명기 연구이다. 그의 “박사학위 논문”과 『서론』에서 그는 오경 중 그 어느 것도 다윗 이전의 것이 없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신명기는 열왕기하 22장에 따르면 요시야 왕의 종교개혁 때 예루살렘 성전에서 대제사장 힐기야가 발견한 율법책의 모든 표식이 담겨 있다고 하였다. 왕과 제사장이 함께 수도밖에 있는 모든 예배처와 희생을 여호와께 드리는 곳을 폐쇄할 목적으로 뭉치게 되었다. 예배를 중앙으로 집중시키는 것은 모든 왕국의 부분들을 더 가깝게 정치적으로 뭉치게 하는 것이며, 경건한 자들의 모든 헌금을 예루실렘 제사장들의 금고에 쏟도록 하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이 책은 정부의 캠페인을 위해 된 것이며, 그것을 발견한 것은 어떤 심리적 충격을 주기 위한 것일 뿐이었다. 그래서 그 책의 연대를 621년(요시야 종교개혁 연대), 혹은 바로 직전으로 고정을 해준다. 이리하여 D문서가 생기게 되었다. 그것은 기원에 있어서 J나 E와는 전혀 별개이며 “여호와가 선택할 도시”라는 언급(12장)을 통해 정부의 정책을 지원하기 위해 형성된 것이다. 이리하여 오경의 자료가 세 가지 문서로 구성이 되었다 ― E(가장 초기의 것), J, 그리고 D(7세기문서).

오경의 단편 설을 처음 주장한 사람은 스코틀랜드의 로마 카톨릭 신부였던 게데스(Alexander Geddes)였다. 게데스는 많은 파편들이 솔로몬 시대에 토라로 편집이 되었으며 그들 중에 어떤 것은 모세 시대의 것이었거나, 혹은 그 이전 시대의 것도 있다고 주장하였다.

에발트는 『창세기의 구성』에서 창세기의 본질적 기초는 모세 때의 것은 아닐지 몰라도 아주 오래된 것이라고 강조하였다. 그는 아이히혼이 주장한 바 히브리어 텍스트에 있는 반복과 표제들을 다른 저자의 작품이라는 이론을 비판하면서 초기 아람의 작품들(저자의 통일성이 불문시 되는 것) 이 셈 문장의 중심적인 특징인 이 반복 표제를 사용하였음을 강조하였다. 그의 책『이스라엘의 역사』에서 모세가 개인적으로 십계명(출 20장)과 가장 오래된 법들을 만들었다고 주장하였다.

창세기 14장과 민수기 33장은 아주 오래된 것이었다. 그러나 이 초기의 자료들도 사사 시대에 살았던 익명의 한 유다 족속에 의해 만들어진 언약의 책에 추가되었다. 솔로몬 시대에 기원의 책(a Book of Origins)이 E 문서의 대부분 자료를 포함하여 어떤 익명의 레위인에 쓰여졌다. 세 번째 보충이 된 것이 모세의 전기형식으로 9세기(엘리야 시대)에 만들어 졌다. 그 후에 선지자 해설자가 나타났고 마지막으로 웃시야 시대(8세기 중엽)에 한 유다 지파 사람이 나타나 여러 곳에서 “야웨”라는 이름을 등장시키고 최종의 편집자로서 모든 자료를 재구성하였다. 에발트가 1840년에 쓴 작품은 실제적으로 보충이론으로부터 결정체이론(the crystallization theory)으로의 출발점이 되었다. 이것은 각 시대의 편집자가 모세의 자료를 가지고 자기 자신의 작품에 여기저기 뜯어 붙인 것으로 보지 않고 전체를 재구성하는 것으로 보는 수정을 가져왔다.

위에 언급된 보충 이론 자들 중 두 번째 인물은 볼릭(Friederich Bleek)이다. 그는 1822년 문서 분석을 여호수아서까지 확장시킴으로써 종래의 다섯 권으로 된 오경 개념을 떠나 육경(Hwxateuch)이라는 용어를 만들었다. 모세의 전통은 그 최종적인 기록 형태에 있어서 육경으로 나타난다고 그는 주장한다. 1836년 그는 창세기 연구를 통해 그 중 몇 문단은 진정으로 모세의 것으로 인정해 주었다. 통일왕조(약 10세기) 때에 어떤 익명의 편집자가 창세기의 가장 초기 형태를 수집함으로써 첫 번째 보충이 시작되었다고, 두 번째 보충은 요시야 왕 시대(약 B.C. 630년, 혹은 620년)에 신명기를 편집한 익명의 사람에 의해 이루어 졌는데 그가 여호수아서를 육경의 형태로 만들게 되었다. 블릭은 후에 구약 서론을 출판하고 그 재판을(1865년)영어로 번역하여 내어놓았다(1869년). 이 작품에서 그는 그 당시 문학 비평이 지니고 있던 극단적인 이론들을 비판하였으나 전체적인 문서주의자의 접근법에 대해서는 지혜롭지도 않고 정당치도 않게 많은 양보를 하였다.

프란츠 딜리취(Franz Delizsch)는 에발트나 블릭보다는 훨씬 더 보수주의적인 경향을 지니고 있었다. 1852년에 출간된 그의 『창세기 주석』에서 그는 오경 중에서 텍스트 자체가 모세의 저작권을 주장한다면 그것은 진정으로 모세의 것이라는 견해를 표명하였다. 나머지 율법들은 진정한 모세의 전통을 제시하는 것이나 가나안 정복시기까지 제사장들에 의해 명문화되지 않았다. E 문서 중 모세의 것이 아닌 부분은 언약의 책을(출 20:23-23:33) 다 모은 엘리에셀(아론의 세째 아들)에 의해 아마 편집되었을 것이다. 조금 후에 다른 편집자가 신명기를 포함하여 여기에다 보충을 하였다. 델리취는 구약성경 중 거의 전 권에 걸쳐 훌륭한 주석을 만들어 내었다.

1853년에는 후벨트(Hermann Hupfeld)분수령적인 작품 『창세기의 자료』(Die Quellen der Genesis)가 나왔다. 이것은 “문서설의 역사에 있어서 코페르니쿠스적 혁명”으로 알려졌다. 그는 먼저 E 문서를 철저하게 분석한 결과 두 개의 구별된 문서가 있음을 알았다. 그 중 하나는 E2로서 문체, 어휘, 주제에 있어서 J와 너무 흡사하며, J에서 발견되는 자료들에 대한 암시들을 종종 하고 있는 것으로서 엘로힘 기자의 작품 중 상당한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었다.

여기서 언급하고자 하는 바는 E 를 구분하는 것이 후벨트에 독창적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 이전에 예나의 일겐(Kari David Ilgen of Jena)이 창세기는 17개의 다른 문서로 구성되어 있으며, 그 중 두 명의 엘로힘 저자와 한 명의 여호와 저자가 있다고 1798년에 발표하였다. 후펠트는 문서설에 있어서 새로운 흥미를 학자들에게 불어넣었다. 가장 큰 관심을 끈 것이 기본문서인 E1이다. 1866년 그라프가 누구보다도 먼저 논쟁을 제기하였다. 그라프는 그의 선생 류스(Eduard Reuss)와 같이 오경에 있는 이 제사규례가 신명기 보다 (B.C.621)더 후에 생긴 것이라고 믿었다. 왜냐하면 D가 J와 E의 법들을 반영하긴 하지만, P의 율법 부분은 전혀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P의 규례들을 포로 시대 때의 것으로 여겨야 한다(B.C. 587-539). 물론 P에 있는 역사적인 부분들은 의심할 여지없이 아주 오래된 것이다. 이리하여 그라프가 만든 “문서들”의 순서는 역사적인 내용을 담은 P, E, J, D와 율법적인 P의 순으로 되었다. 그는 E가 J에 의해 추

가되었으며, 요시야 시대에 E-J가 D의 저자에 의해 편집되었다고 한다.

2. 문서설의 네 문서 요약 소개

① J 는 남조 유다에서 어느 익명의 저자에 의해 B.C. 850년 경에 쓰여졌다. 그는 개인의 전기에 특히 관심이 깊었으며 한 인물, 인물의 개성을 생생하게 묘사한다. 하나님에 대해서는 가끔 신인 동형적으로 그린다(즉, 마치 그분의 몸, 신체 각 부가 있고 또 인간처럼 정서가 있는 것으로 묘사함). 또한 그는 선지자처럼 윤리적이고 신학적인 사상에 관심을 가지나 제사나 의식에는 거의 흥미가 없다.

② E 는 이스라엘의 북조에서 무명의 저자에 의해 B.C. 750년에 쓰여졌다. 그는 설화체에 있어서는 J 보다 좀더 객관적이며 윤리적이고, 신학적인 문제에 있어서는 약간 관심이 적다. 오히려 그는 구체적인 것들(혹은, 이름들의 기원, 이스라엘 문화에 있어서 특별히 중요한 관습들)에 더 집착하였다. 창세기에서 E 는 의식과 예배에 관심을 나타내며 하나님께서 꿈과 환상으로 자신을 계시하는 것으로 서술한다(J처럼 하나님께서 직접적으로 신인 동형적 접촉을 하는 것으로 보지 않는다). 출애굽기에서 민수기까지 E 는 모세를 놀라운 기적을 일으키는 자로 높여주며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신인 동형적인 양태로 교통하였음을 소개하고 있다. 약 B.C. 650년에 무명의 편집자가 J와 E를 결합하여 J-E 를 만들었다.

③ D는 요시야 왕이 B.C. 621년에 부흥을 일으킬 때 대제사장 힐기야의 지도를 따라 공격적인 개혁의 프로그램으로써 만들어졌다. 그 목적은 유다 왕국에 있는 모든 자들로 하여금 “높은 곳”(high places)에 있는 그들의 지방성소(신당)를 그들의 모든 제사와 종교적 헌물들을 예루살렘 성전에 바치도록 하는데 있었다. 이 문서는 예언자들, 특히 예레미야의 영향을 강하게 입고 있다. 이 신명기 학파의 사람들이 후에 여호수아서, 사사기, 사무엘서, 열왕기에 기록된 역사적 사실들을 제기하였다.

④ P 는 에스겔의 성결법전(레 17-26장 : 약 570년, H로 알려져 있음)으로부터 시작하여 “모세의 율법에 익숙한 학사” 에스라까지 여러 시대에 걸쳐 편집이 되었고 에스라는 가장 후대의 제사문서를 율법에 첨가시켰다. P는 이스라엘 신정정치의 기원과 조직들을 체계적으로 서술하는데 관심을 갖고 있다. 또한 족보와 제사제도, 희생의 세부사항들과 기원들에 대해 특별한 관심을 갖고 있다.

3. 문서설의 변증법적 발전 개요

① 아스트룩은 하나님의 이름이 다른 것이 다른 자료를 가리키는 것이라고 말하면서 J와 로 구 분했고, 이 아이디어가 아이히혼에 의해 더 체계화되었다(J보다 E가 더 이전 것임).

② 더 베테는 D가 요시야 시대에 만들어 졌다고 했다(B.C. 621).

③ 후펠트는 E를 초기의 E1(혹은 P)과 후대의 E2(J를 더 닮은 것임)로 구분을 하고 문서들의 순 서를 P E J D로 만들었다.

④ 그라프는 P의 율법적 부분이 가장 후대의 것으로서 포로 시대의 것이라고 한다. 그러면서도 역사적 부분은 좀더 이전에 있었던 것으로 여긴다. 그의 문서 순서는 J1 E D P2 이다.

⑤ 벨하우젠은 문서설을 완전히 다듬고 J E D P 를 체계적이고 진화론적인 형태로 발전시켰다.

문서설의 발전과정에서 모순과 역전이 있었음을 관찰해 보자.

⑴ 하나님의 이름이 다른 것이 다른 저자를 가리키는 것인데(아스트룩, 아이히혼), 각 저자는 자 신의 관심, 문체, 어휘를 가지고 있다.

⑵ 동일한 하나님의 이름(엘로힘)이 또 다른 저자를 가리킨다(후펠트). 어떤 E 구절들은 그 관심, 문체, 혹은 어휘에 있어서 J와 다르지 않은 것도 있다.

⑶ 관심과 문체에 있어서 J와 가장 다른 그 엘로힘 저자는(P) 가장 초기의 것임이 틀림없다(야훼

가 엘로힘 보다는 후대의 이름이다).

⑷ 아니다. 그것이 아니다. P가 가장 초기의 것이 아니다. 가장 후대의 것이다(왜냐하면 그렇게 되어야 히브리 종교가 원시적인 다신론에서부터 제사장 중심의 유일신으로 발전했다는 진화 론에 일치하기 때문이다).

⑸ J 는 물론 E 보다 후대의 것이다(그라프까지의 모든 비평가들). 그러나 J는 실제적으로 E 보 다 앞선다(쿠에넨과 벨하우젠).

벨하우젠의 가설을 가장 철두철미하게 반박한 학자는 프린스톤의 그린(William Henry Green)인데, 그의 Unity of the Book of Genesis(New York: Scribner, 1895)와 Higher Criticism of the Pentateuch(New York: Scrobner, 1896)는 두 책 모두 19세기 말에 미국에서 나왔다. 그는 풍부하고 섬세하게 제시된 가설이 성경 텍스트의 실제적인 자료와 얼마나 상충되며 또한 비평적인 기준들이 얼마나 비논리적이며 자체 모순을 안고 있는지 드러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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