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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신자를 위한 기초성경공부 8단계-3(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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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강 “구속의 사랑을 베푸시는 하나님”


말씀:창세기 3:1-24     요절:창세기 3:15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라 하시고”


 지난 2강에서 에덴을 창설하시고 아담을 축복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배웠읍니다.특히 하나님은 아담에게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실과를 따먹지 말라는 거룩한 계명의 말씀을 주셨읍니다. 아담은 이 계명을 지킴으로서 영생복락을 누릴 수 있었읍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에 보면 아담과 이브는 사단의 꼬임에 빠져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실과’를 따 먹고 맙니다. 극결과로 낙원에서 추방되고 맙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우리는 사람을 유혹하여 죄에 빠지게하는 사단의 정체가 무엇이며, 죄지은 인간을 뜨겁게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구속의 사랑이 얼마나 큰가를 배울수 있읍니다. 특히 죄인들을 구속하시기 위해서 그리스도를 보내신 하나님의 크신 구속의 사랑을 영접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Ⅰ.유혹자 사단 (1-6)

1절을 보십시오. 여호와 하나님께서 지으신 들짐승 중에 뱀이 가장 간교하였읍니다. ‘간교하다’는 말은 지혜롭고, 영특하다는 말입니다. 뱀이 사단의 도구로 쓰임받기 전에는 지혜롭고 영리하여서 사람과 가까이 지내며, 많은 사랑을 받았던것 같읍니다. 그런데 사단이 바로 이점을 이용하여 사람을 유혹하는 도구로 삼았읍니다. 어느날 이 뱀이 여자를 찾아왔읍니다. 이뱀이 여자에게 무슨 질문을 했읍니까? 1절 하반절릉 보십시오.

 “하나님이 참으로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이질문은 아주 간교한 사단의 질문입니다. 이 질문을 던진 의도가 무엇이겠읍니까? 하나님과 그 말씀에대한 의심을 심기 위한 질문이었읍니다. 2:16,17을 보십시오.

 사랑과 은혜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거룩한 계명을 주셨읍니다. 그러나 뱀은 여자에게 권위와 위엄을 상징하는 엘로힘(Elohim)이라는 이름을 사용하였읍니다.이것은 하나님과 인간사이를 이간질 시키려는 의도가 숨어 있읍니다. 또한‘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질문함으로서 하나의 금지사항을 과장하여 전체 모든 나무의 실과를 다 금지하신 것처럼 생각하도록 유도 질문을 했읍니다. 또 ‘참으로’라는 부사를 사용하여 진실을 가장하여 여자의 마음속에 말씀에대한 불신을 심고자 했읍니다.


 이런 사단의 질문에 진실하게 대답하려 하면 사단이 파놓은 함정에 빠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사단의 질문을 부정하고, 예수님과 같이 즉시 진리의 말씀으로 물리쳐야 합니다.(마4:1-11). 그러나 여자는 사단이 공격해 왔을때 어떻게 대답합니까?

 2,3절을 보십시오. “여자가 뱀에게 말하되 동산나무의 실과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동산중앙에 있는 나무의 실과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

 이 여자의 대답을 하나님께서 주신 계명의 말씀과 유심히 비교해 보십시오. 하나님께서는 동산 각종나무의 실과를 마음대로 먹으라고 무한한 축복과 자유를 주셨습니다. 그러나 여자는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는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라고 대답했읍니다. 이것은 이미 하나님의 축복에 대한 감사가 없어지고 하나님의 은혜를받고도 감사치 않고, 적극적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지 않는 이것이 타락의 첫단계입니다(롬1:21). 또한 하나님께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라고 분명히 지적 하셨는데도 여자는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라고 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케 하였읍니다.


 그보다도 하나님의 말씀에 ‘먹지말라’고 했는데 여자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하더라고 자기 생각을 덧붙여 말했읍니다. 하나님께서 금하신 일을 과장해서 불평쪼로 말했읍니다. 선악과를 두시고 계명을 주신 하나님의 크신 사랑과 영적인 축복은 생각지 않고, 울법적으로 생각하여 부담스러워 하게 되었읍니다. 여자는 점차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고, 하나님께서 주신 계명의 말씀을 자기 나름대로 해석하고 뜯어 고치려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분명히 ‘선악과를 먹으면 정녕 죽으리라’ 고 경고하셨읍니다. 그러나 여자는 ‘죽을까 하노라’고 대답함으로서 하나님의 심판을 경홀히 여기게 되었읍니다. ‘죽을 수도 있고 죽을지도 모른다’는 뜻입니다. 여자는 절대적인 하나님의 말씀을 상대적으로 받아 들이고 있습니다.

 이상에서 볼 때 여자는 사단의 간교한 질문 공세를 받고 의심병에 걸렸읍니다.

 절대적인 계명의 말씀을 의심하게 되었읍니다. “하나님이 참으로 동산 모든 나무열매는 하나는 따먹지 말라고 하셨다는데 그것이 정말이냐(공동번역)?“ 이 질문이 얼마나 간교한 질문입니까? 오늘날도 사단은 우리와 가장 가까운 부모님이나 친구의 일을 통해서 이런 질문을 하며 접근해 오고 있읍니다. 사실 우리가 바치는 시간과 물질은 아주 작은 것입니다. 특히 양들을 일주일에 기초공부 한번만 하면 됩니다.


그 시간은 약 2시간도 안 걸립니다. 그런데 사단은 그 마음속에 일주일 모든 시간을 성경공부 하는데 다 바치는 것처럼 과장된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시간이 없어서 이번주는 공부를 못하겠다고 합니다. 다음주에는 미안해서 아예 말도 안하고 펑크를 내 버립니다.

 여자가 말씀에 대한 절대성을 잃고 ‘죽을까 하노라’는 말을 하자 사단을 재 빨리 기회를 포착하였읍니다.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4)”. 사단은 여자의 흔들리는 마음 속에 거짓된 확신을 심어 주었읍니다. 하나님께서는 정녕 죽으리라고 말씀하셨는데 사단은 결코 죽지 않는다고 했읍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진리와 정반대 되는 말을 진리인 것처럼 말했읍니다. “선악과를 따 먹어도 결코 죽지 않는다 선악과를 따먹는 것을 조금도 두려워 할 필요가 없어.” 학생들은 신앙생활에 회의가 생기면 교수님을 찾아 갑니다. 교수님들은 아주 인간적인 말로 학생을 위로하며, 아주 학생을 위하는 것처럼 온갖 비진리를 말하며 하나님을 떠나도록 합니다. “예수 안믿는다고 지옥 가겠느나 착하게 살면 되지 않겠느가?” “학생은 공부를 해야지 신앙을 우선으로 하면 되겠느나?” 이런 말을 듣고 미련없이 떠난 분들도 많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5절을 보십시오.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라.”  사단은 이제 적극적으로 선악과를 따먹도록 유혹합니다. 그것을 먹는 날에는 눈이 밝아진다, 하나님과 같이 된다고 부추기면서 여자의 호기심과 교만심을 충동질 했습니다. 또 “하나님께서 선악과를 못따먹도록 한것은 너희를 사랑해서가 아니라 너희가 하나님과 같이 되는 것을 시기 하기 때문이야.” 결국 사단은 여자의 마음속에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의심케하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마음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사단은 온갖 달콤한 말로 여자를 유혹하여 하나님께서 금지한 선악과 따먹도록 밀어 부쳤읍니다.


 사단의 집중적인 공격을 받은 여자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6절을 보십시오.

 “여자가 그 나무을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헤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과실을 따먹고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하나님에 대한 불신에 찬눈으로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를 바라보니 안목의 정욕과 지식에 대한 욕망, 온갖 탐심이 일어났읍니다. 선악과를 두신 하나님의 참 뜻은 첫째, 영적인 질서를 세우기 위한 것입니다. 아담과 이브가 선악과 나무를 볼때마다 창조주 하나님을 기억하고 하나님께 감사하며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하심입니다.축복에 빠져서 축복을 주신 하나님을 잊어 버리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읍니다. 둘째는 자율적인 순종을 원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시고, 인격적으로 자발적으로 순종하기를 원하셨읍니다. 그러므로 선악과는 아담과 여자의 영적생활의 걸잡이가 되었읍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이 계속하여 낙원을 누릴수 있는 믿음의 비밀이 담겨 있는 나무입니다. 그러나, 이제 여자의 눈에는 이런 영적인 의미와 축복의 말씀은 의미가 없어졌읍니다. 너무 고리타분하게 여겨졌 읍니다. 이렇게 아름답고 먹음직하고 지혜롭게 할 과실을 두고 안먹다니, 내가 빠져도 너무 빠졌지, 결국 여자는 마음에 물밀듯이 밀려 오는 유혹의 물결을 뿌리치지 못하고 선악과를 따먹고 말았읍니다. 그리고 남편에게도 주어 먹게 하였읍니다. 결국 이들은 창조주 하나님께 먹으면 정녕 죽으리라 명한 그 나무 실과를 따먹고하나님께 불순중하는 죄를 범하게 되었읍니다.


 이상에서 볼 때 뱀의 정체는 무엇입니까? 유혹자입니다. 계시록 12:9을 보십시오. “큰 용이 내어 쫓기니 옛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단이라고도 하는 온 천하를 꾀는 자라“. 그렇습니다. 뱀의 정체는 유혹자 사단입니다. ‘사단’ 이란 말은 ‘대적하는 자’라는 뜻입니다. 또 마귀라는 말은 ‘중상하는 자’, ‘훼방하는자’ 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사단은 온 천하 만민을 유혹하여 하나님을 대적하게 만들고, 하나님의 역사를 훼방하고 중상하는 원수입니다. 그러면 이 사단은 어떤 조재입니까? 유다서 6절을 보면 “자기의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처소를 떠난 천사들“이라고 했읍니다. 또 베드로 후서 2:4 에서는 ‘범죄한 천사’ 라고 했읍니다. 곧 사단은 타락한 천사의 무리입니다. 원래 천사들도 하나님의 피조물입니다(골1:16). 특히 사단은 빛의 천사들로서 하나님의 보좌를 섬기는 사명을 받았읍니다(사14:12-17, 에스겔 28:11-15).


그러나 교만하여져서 하나님을 대적하게 되었읍니다. 여기에서 사단(대적자)이라는 말이 유래 되었읍니다. 그러므로 사단은 천사와 본질적으로 동일한 영적인 존재입니다. 우리들의 육신의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우리의 생각과 마을을 움직일 수 있는 힘과 지혜을 가지고 있는 인격적인 존재입니다. 천사장 미카엘도 감히 사단을 꾸짖을 수 없을 만큼 사단은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읍니다(유다서 9). 우리의 싸움은 혈과 육의 싸움이 아니요, 바로 이 사단과의 싸움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양을 치고, 많은 수고를 한다고 해도 사단의 훼방거리가 되면 모든 수고가 허사가 되고 맙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고, 과감하게 사단을 대적하여 싸워야 합니다(엡6:1-18). 사단은 예수님의 이름권세를 가장 무서워 합니다. 또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의 능력 앞에 무력해집니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를 읺지 말아야 합니다, 성경말씀으로 사단의 궤계를 파하고 대적하 때 사단은 떠나갑니다. 예수님께서도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사단의 유혹을 물리치셨읍니다. 사단은 온갖 아름다운말로 찾아오지마는 양의 탈을 쓴 이리와 같은 존재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단의 본성을 분명히 아셨읍니다.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느니라. 저는 처음부터 살인한자요, 진라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못하고, 거짓말을 말할 때마다 제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저가 거짓말장이요, 거짓의 아비가 됨이라(요8:44)“. 사단은 욕심장이요, 거짓말장이요, 비진리를 말하는 자이요, 살인자입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달콤한 말로 유혹해도 사단의 유혹에 넘어가서는 안 됩니다.


 또 한가지 명심해야 할 사실은 사단의 공격 목표는 아담이라는 사실입니다. 사단은 아담을 공격 목표로 삼고 먼저 여자를 유혹하는데 많은 노력을 한 것입니다. 그래서 아담이 가장 신뢰하는 아내를 통해서 아담을 쓰러 뜨린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명하신 계명을 어겼음을 지적하셨읍니다(17상). 이처럼 사단은 가까운 사람을 통해서 역사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십자가를 질 것을 말씀하셨을 때 사단이 예수님께서 가장 사랑하시는 베드로를 통해서 가로막았읍니다. 이때 예수님께서는 베드로를 향하여, “사단아! 물러가라”고 말씀하셨읍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하나님 앞에 깨어 있어야 합니다. 인간적으로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 하지라도 말씀에 어긋나는 말을 할 때는 단호히 거절하고, 책망을 할 수 있어야 겠읍니다. 사단은 어린 양들을 통해서 목자를 넘어뜨리려 합니다. 이런 사단의 함정에 빠져서는 안 되겠읍니다. 양들이 어려워져도 목자만 믿음 위에 굳게 서 있으면 양들은 다시 돌아오기 마련입니다. 양이 어려워 졌다고 목자가 어려지고,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고, 말씀을 경홀히 여기면 둘 다 망하게 됩니다. 이번 가을학기에는 믿음으로 마귀를 대적하고, 승리를 얻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Ⅱ. 아담을 찾으시는 하나님 (7-13)

그러면 선악과를 따먹은 아담과 하와는 어떻게 되었읍니까? 첫째, 육신의 눈이 밝아졌읍니다. 7절을 보십시요. 자기들의 몸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 나무의 잎을 엮어 치마를 만들어 입었읍니다. 사단은 그들의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된다고 했읍니다(5). 그러나 그들은 육신의 눈이 밝아져서, 자기들의 벗은 줄을 알게 되었고, 심한 수치심에 사로 잡히게 되었읍니다, 축복으로 주신 생식기관이 육신의 쾌락을 좇는 도구로 전락하였기 때문입니다. 이때부터 인간들은 정욕의 노예가 되었읍니다. 사단은 하나님과 같이 된다고 했지만 하나님과 같이 되기는 커녕 오히려 짐승과 같이 되어버렸읍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리게 되었고, 영적인 눈이 어두어져 버렸읍니다. 사단은 요즈음 경험주의라는 말을 쓰고 지성인들을 많이 유혹하는 것 같습니다. 문학을 하는 사람들에겐 모든 것을 경험해 보아야 한다고 유혹합니다. 선도 경험해보고 악도 경험해 보아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악을 경험하게 되면 악의 세계에 눈이 밝아집니다. 십계명 중 제7계명이 간음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사단은 간음이 무엇인지 알려면 간음을 경험해 보아야 하지 않겠는가고 유혹합니다 그래서 간음을 했다고 합시다. 그러면 그 후부터는 더욱 정욕적인 생각에 시달리게 됩니다. 그만큼 육신의 눈이 밝아졌기 때문입니다. 또 그 만큼 유혹을 많이 받게 됩니다. 결국 한번 두번 정욕적인 죄를 짓다가 정욕의 노예가 되고 맙니다. 그러므로 악을 경험해서 알려고 해서는 안됩니다. 단순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는 그 길이 가장 지혜로운 길임을 믿습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말씀에 순종하며 살 때 우리 영혼이 깨끗하게 되며, 영적인 눈이 밝아지게 됩니다(벧전1:22)


 둘째, 존재의미를 상실하게 되었읍니다. 8절을 보십시오. “날이 서늘할때에 동산을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소리를 들었읍니다. 그러자 아담과 그 아내는 여호와의 낯을 피하여 동산나무 사이에 숨어버렸읍니다. 여호와의 낯을 피하여 숨었다는 사실은 하나님 앞에서 존재의미가 상실된 것을 의미합니다. 인가은 하나님 보시기에 심히 기뻐하시는 대상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뜻을 섬기는 자로 지음을 받았읍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숨어버렸으니 존재목적이 상실된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 앞에 쓸모없는 존재가 되었읍니다. 또한 인간은 절대적인 존재의미를 상실하게 되었기 때문에 왜 사는가, 무엇을 위하여 살아야 하는지 인생의 목적과 방향을 잃게 되었읍니다. 방황하게 되었읍니다.


 세째, 두려움에 사로 잡혔읍니다.

 10절을 보십시오. 아담이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숨은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는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읍니다. 이 두려움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한데서 오는 죄의식에서 나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사단은 여자라를 꼬일 때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따 먹으면 하나님과 같이 된다고 했읍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같이 되기는 커녕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에 사로 잡히게 되었읍니다. 뿐만아니라 두려움은 벌거벗은 수치를 가리려는 데서 생깁니다. 죄지은 인간은 어찌하든지 그 수치를 가리고자 합니다. 그래서 언제나 긴장하고, 자신의 추하고 더러운 모습을 숨깁니다. 빛 가운데 나오기를 싫어합니다(요3:19,20)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이상에서 볼 때 사단의 유혹에 넘어가 범죄하게 될 경우 하나님과 같이 되기는 커녕 오히려 하나님의 형상을 잃고 짐승과 같이 되어 버렸읍니다. 또한 허무주의와 죽음과 심판에 대한 두려움에 시달리게 되었읍니다. 사랑의 하나님이 심판의 하나님으로 부각이 되어 버렸읍니다. 빛되신 하나님께 나오는 것이 두려워서 어두움 속에서 살아가게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무서운 죄의식과 두려움에 시달리는 아담을 어떻게 도와 주셨읍니까?


 9절을 보십시오.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 하나님이 아담이 어디 숨어 있는지 몰라서 찾으시는 것이 아닙니다. 아담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자기자신이 어디에 있으며, 왜 숨어 있는가를 깨닫고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기다리시는 음성입니다. 이 음성은 잃은 양을 찾도록 찾아다니시는 목자의 음성입니다.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이 음성은 집나간 둘째 아들이 돌아오기를 애타게 기다리는 아버지의 안타까운 심정과 같습니다(눅15:20). 하나님은 아담이 타락하였다고 그냥 버리시지 않았읍니다. 하나님은 아담을 변함없이 사랑하셨읍니다. 다만 변해버린 것은 아담의 마음입니다. 수치심, 존재의미 상실, 죄의식, 두려움, 불신, 교만, 의심, 이 모든것은 아담의 마음속에 일어난 변화입니다. 그리고 아담은 하나님을 멀리하였읍니다. 자기 불의에 빠져서 숨어 있었읍니다. 그러나 아담을 창조하시고 심히 기뻐하신 하나님께서는 아담을 애타게 찾으셨읍니다. 하나님은 아흔아홉을 인하여 기뻐하는 것보다 죄인 하나가 회계하고 하나님 품으로 돌아오는것을 더 기뻐하시는 분이십니다(눅15:7).


 그러나 아담은 어떻게 대답했읍니까? 10절을 보십시오.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아담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한 죄보다 벌거벗은 것에 대한 수치심에 사로잡혀 있었읍니다. 그는 죄의 결과에 대한 수치심과 두려움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의 음성을 깨닫지 못했읍니다. 회계할 수가 없었읍니다. 하나님은 이런 아담에게 죄를 지적하셨읍니다. 11절을 보십시오. “누가 너희 벗었음을 네게 고하였느냐? 내가 너더러 먹지말라명한 그나무의 실과를 내가 먹었느냐?” 아담이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숨게 된 것은 수치심과 두려움 때문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먹지말라고 명한 그 나무 실과를 먹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명령을 어기고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실과를 따먹은 것은 하나님의 창조주권을 멸시한 행위요,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지 않는 교만의 죄악입니다.


 그러나 아담은 어떻게 대답했읍니까? 12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하게 하신 여자, 그가 그나무 실과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아담은 자기의 근본 불순종의 죄악을 깊이 회개하지 않았읍니다. 자기 행위가 얼마나 하나님을 슬프게 했는가를 깨닫지 못하고 여자에게 책임을 전가했읍니다. 부부사이에 사랑의 질서가 파괴 되고 말았읍니다. 서로 원망하고 불화가 생겼읍니다. 이 사건은 무엇을 말해줍니까? 하나님과 바른 관계성이 깨어지면 사람과 사람의 관계성도 깨어진다는 사실입니다. 또한 여자는 뱀에게 책임을 전가 했읍니다. “뱀이 나를 꽤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이상에서 볼때 범죄한 아담을 찾아오신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아담이 불순종의 죄악을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오기를 안타깝게 기다리시는 사랑의 주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요일4:8). 죄를 회개하고 돌아오는 자는 무조건 용서해 주십니다.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은 범죄하기 전이나 후에나 변함이 없읍니다. 범죄한 후에는 그사랑이 더욱 강열합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교만과 불신으로 하나님의 품을 떠난 사람들,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고 범죄한 사람들이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안타깝게 기다리십니다. 잃은 양을 찾는 목자와 같이 당신을 찾고 계십니다.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왜 있어야 할 자리에 있지않고, 어디 있느냐?” 이 하나님의 음성을 매순간 듣고 세상을 향하는 마음을 돌이켜 하나님께로 돌아와야 하겠읍니다. 지금도 이 자리에 있어야 할 분들이 많이 오지 않았읍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네가 어디 있느냐?” 우리는 이 하나님의 상한 목자의 심정으로 잃은 양을 찾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여야겠읍니다.


 또한 아담을 찾아오신 하나님은 아담의 죄를 지적하시고 책망하심으로 회개하도록 도우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죄인은 사랑하시나 죄는 미워하십니다. “누가 너희의 벗었음을 네게 고하였느냐? 내가 너더러 먹지말라 명한 그 나무실과를 네가 먹었느냐?” 하나님께서는 아담의 불순종의 죄를 책망하심으로 회개하도록 도우셨읍니다. 이 사랑이 참사랑입니다. 요셉은 형들의 죄를 회개시키기 위해서 많은 사건을 만들었읍니다. 그러나 마침내 형들이 회개하게 되었읍니다. 이 사랑이 가장 고귀한 사랑이요 영혼을 살리는 사랑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자신이 이땅에 오신 목적은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고 말씀하셨읍니다(눅5:32). 대개 범죄한 사람들은 교만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멸시하고 , 변명합니다. 이들을 끝까지 참고 회개시키기는 쉽지 않읍니다. 교만하여 대적하는 분들을 겸손히 섬기려면 속이 다 내려 앉읍니다. 그러나 계속 도전하여 진리의 말씀을 심고 회개하도록 도울때 진정으로 영적인 사랑의 과계성을 회복하게 됩니다. 죄를 눈감아 주는 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Ⅲ. 구속의 사랑을 베푸시는 하나님 (14-24)

 14-24절 말씀은 하나님께서 뱀을 저주하시고, 여자와 아담을 벌하시며 낙원에서 쫓아내시는 사건입니다. 그러나 이런 심판을 내리시는 가운데서도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크신 구속의 사랑이 잘 나타나 있읍니다.


(1) 구속의 씨를 약속하신 하나님(14,15)

 14절을 보십시오. “네가 이렇게 하였으니 네가 모든 육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종신토록 흙을 먹을 지니라” 뱀은 처음 창조될때는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 지혜롭고 고등동물로 지어졌읍니다. 그래서 인간과 가장 가까이 지내며, 사랑을 독차지 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종신토록 흙속에 묻혀서 살게 되었읍니다. 뱀은 잠시 사단의 도구로 쓰임받고 가장 비참한 저주를 받게 되었읍니다.

 뿐만 아닙니다 15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은 뱀을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셨읍니다.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하고 너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머리를 상하게 할것이요, 너는 그의 말꿈치를 상하게 할것이니라”. 이 말씀은 뱀에게 주는 심판의 말도 되지만 그뒤에 숨어 있는 원수 마귀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의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여자의 후손 가운데서 그리스도를 보내서 사단의 머리를 깨뜨릴 것을 약속하신 사건입니다. 그래서 사단의 권세아래 있는 모든 인생들을 죄 가운데서 구속하실것을 약속하신 것입니다. 이 말씀은 메시아 탄생에 대한 최초의 약속입니다. 그래서 원시복음(protevangel) 이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약속을 신실하게 지키시고 마침내 하나님의 아들 예수그리스도를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게 하셨읍니다(마1:23,갈4:4). 그리고 아담이후 모든 인류의 죄를 그 몸에 담당시키시고, 십자가에 피흘려 죽게하셨읍니다. 그리고 죽은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셔서 죽음의 권세 아래 있는 저와 여러분들을 온전히 구속하셨읍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배반하고 원수가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외아들까지 아끼지 아니하시고 내어주신 구속의 사랑을 찬양합니다.


 (2) 가죽 옷을 지어 입히신 하나님(16-21)

 하나님께서는 뱀의 유혹에 먼저 넘어간 여자를 어떻게 하셨읍니까? 16절을 보십시오. “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잉태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것이며, 너는 남편을 사모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것이니라 하시니라” 하나님은 여자에게 잉태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셨읍니다. 원래 여자가 생명을 탄생하는것은 하나님의 축복이었읍니다(창1:22). 그러나 이제 잉태하는 고통이 크게 더하여 졌읍니다. 해산의 고통을 이처럼 크게 더하신 것은 자식을 낳을때마다 뱀의 유혹에 넘어가 하나님을 슬프게 하였던 죄악을 회개하고,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게하려 함이었읍니다. 또 남편을 사모하고 남편의 다스림을 받는 벌을 주셨읍니다. 그래서 남편을 동역하는 동역자의 특권과 자유를 상실하고 종속적인 관계가 되어 버렸읍니다. 남편을 신앙적으로 돕지 못하고 오히려 범죄케한 이브는 그 모든 특권과 자유를 잃게 되었읍니다. 역사적으로 문화권속에 남편과 아내의 관계는 종속적인 관계였읍니다.심지어 어떤 문화권속에는 남편이 아내의 생명을 좌우할수 있을 정도였읍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영적질서를 회복한 가정에서는 다시 평등과 자유, 사랑의 질서가 회복되어 서로 연합하여 하나님을 섬길수 있게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아담을 어떻게 벌하셨읍니까?

 17절을 보십시오. 아담의 범죄로 땅이 저주를 받게 됩니다. 옥토가 박토로 바뀌었고,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을 수 있게 되었읍니다. 18절에는 땅이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내었읍니다. 사람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게되었읍니다(19상). 하나님께서 주신 거룩한 사명을 감당하는 존재에서 먹고 살기 위해서 땀을 흘려 일해야하는 존재로 전락하게 되었읍니다. 아담의 죄로 인하여 모든 피조물이 저주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사고 바울은 모든 피조물이 허무한데 굴복하며, 탄식하고 있다고 했읍니다(롬8:20-22). 뿐만 아닙니다. 19절을 보십시오. 인간에게 죽음이 선고 되었읍니다.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가리니 그 속에서 네가 취함을 입었음이니라” 이 말씀은 온 인류에 내려진 사형선고였읍니다. 성서적으로 볼때 죽음이란 세가지가 있읍니다. 첫째, 영적인 죽음입니다. 이것은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관계성이 단절되는 것입니다. 둘째는 육체적인 죽음입니다. 이것은 육체와 영혼이 분리되는 것입니다. 육체는 흙으로 돌아가고 영혼은 하나님께로 갑니다. 세째는 영원한 죽음입니다. 영혼이 하나님 앞에서 심판을 받아 영원한 유황불속에 던져지는 것이요, 곧 영벌을 말합니다. 이것을 계시록에는 둘째사망이라고 부릅니다(계21:8). 이때는 죽을 수도 없으며 세세토록 괴로움을 당합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죽음을 선고하신것은 죄의 댓가는 죽음이기 때문이요(롬6:23). “정녕 죽으리라”는 말씀대로 선고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공의로우신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범죄한 인간들이 공의로우신 하나님 앞에서 죄를 깨닫고 회개하기를 원하셨읍니다.


 아담은 하나님의 준엄한 심판을 받은후 아내의 이름을 하와라 지었읍니다. 하와라는 말은 생명샘이라는 말입니다. 아담은 원시복음을 영접하고, 여자의 후손을 통한 구원을 소망하게 된것 같습니다. 하나님은 회개한 아담과 이브를 위하여 짐승의 피를 흘려 희생하심으로 가죽옷을 지어 입히셨읍니다. 그들의 허물과 수치를 감싸주셨읍니다. 이것은 죄인들에 대한 하나님의 지극한 사랑의 표현입니다. 이 사건은 희생을 드리는 제사제도의 기원이 되었다고 합니다. 또한 장차 올 여자의 후손 그리스도의 희생을 통해서만 인간이 죄를 가리우심 받을 수 있다는 복음진리를 암시해줍니다.


 (3) 영생의 소망을 주신 하나님(23-24)

 선악을알게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은 인간에게 내린 최후의 벌이 무엇입니까? 22절을 보십시오.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같이 되었으니 그가 손을 들어 생명나무 실과도 따먹고 영생할까 하노라 하시고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내어 보내어 근본된 토지를 갈게 하시니라.”하나님은 인간이 죄문제가 완전히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생명나무 열매를 따먹게 되면 인간은 영영히 하나님의 원수가 되고 심판을 받게 됩니다. 그래서 인간이 일시적으로 중노동과 죽음의 고통을 맛보더라도 예수그리스도를 통해서 죄문제를 완전히 해결받은 후 영생복락을 누리게 하셨읍니다. 아담과 하와는 에덴을 떠나기 싫어 하였던것 같습니다. 또 죽음을 선고받은 후 생명나무 과실을 따먹고자 했는지도 모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쫓이내시고, 두루도는 화염검을 두어 생명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셨읍니다. 하나님께서 생명나무를 없애지 않고, 지키게 한 것은 아담에게 영생에 대한 소망을 심어주신 것입니다. 죄인들을 변함없이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구속의 사랑을 찬양합니다. 할렐루야!

* 바이블넷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7-03-30 17:31)
도토리는 우리 선조들이 구황식품으로 널리 먹어 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