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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평] <톰 라이트 죽음 이후를 말하다>(IVP)
   글쓴이 : 바이블넷     조회 : 4539    

죽음, 그리고 삶의 재발견

지난해 어머니를 여의었다. 어머니는 2년 동안 간질성 폐질환을 앓으셨다. 류머티즘 관절염에서 비롯된 이 병은 어머니의 폐 조직에 염증을 일으켰고, 그로 인해 생긴 폐조직의 딱지들은 어머니의 폐를 점점 무력화시켰다. 시간이 지날수록 어머니의 호흡은 가빠지셨다. 2013년 11월 6일 어머니는 호흡을 멈추고, 주님의 부르심을 받으셨다. 길고 길었던 고통에 비해서 부르심의 시간은 너무나 짧았다. 중환자실에 들어가신 지 불과 3일 만에 어머니는 돌아가셨다.

어머니의 장례는 원근 각지에서 찾아온 믿음의 식구들의 넘치는 위로와 주님이 주신 평안 속에 은혜롭게 치러졌다. 숨을 쉴 수 없는 고통으로 많은 날을 괴로워하며, 홀로 지새우신 어머니를 보았기에 장례 기간 내내 나는 슬픔보다는 어머니가 그 사모하시던 주님 품에서 안식하시게 되었다는 생각에 오히려 안도했다. 하지만 그 안도는 며칠을 가지 못했다.

신실한 믿음을 가지셨던 어머니의 빈자리는 컸다. 뵐 적마다 "아들, 많이 힘들지?" 하고 다정하게 말씀하시며 위로해 주시던 어머니의 정겨운 모습과 음성을 듣지 못하는 것은 기본이었다. 홀로 되시고 자꾸만 초췌해 가시는 아버지를 뵐 때마다 어머니 생각이 간절했다. 어머니의 손때 묻은 유품들을 정리하면서, 어머니와 다녔던 길들, 병원들, 음식점들을 지나칠 때마다 죽음과 함께 찾아온 어머니의 존재의 빈자리들을 실감할 수밖에 없었다. 내 곁에 계시던 어머니는 어디로 가셨는가? 천국에 가셨는가? 가셨다면 어떻게 계시는가? 하는 질문들을 던지면서….



▲ <톰 라이트, 죽음 이후를 말하다> / 톰 라이트 지음 / 박규태 옮김 / IVP 펴냄/ 124면 / 8000원

그러던 중에 이 책을 만났다. 저자 톰 라이트는 영국 성공회 내 선명한 복음주의자이며, 대중적 필체로 성경과 기독교에 대해 제기되는 핵심적 질문들을 회피함 없이 정면으로 다루는 것으로 유명하단다. 아니나 다를까 전체가 5장으로 구성된 이 책 역시 믿는 자의 죽음 이후의 상태에 대해 정면으로 마주하게 한다.

책은 남편의 죽음 앞에 '그이는 지금 어디 있나요?"라고 부르짖는 한 젊은 여인의 이야기에서 시작한다. 이 여인은 모든 죽은 자를 기억하고, 추모하는 만령절(萬靈節, All Souls' Day)의 예배를 통해 아무런 위로도 받지 못한다(이 책을 읽을 때 계속 명심할 것은 저자가 몸담고 있는 영국 성공회의 전통이다.

성공회는 11월 1일을 이미 천국에 있는 믿음의 성인들을 기억하고 기념하는 만성절로, 11월 2일은 성인이 아닌 죽은 자들을 추모하고 위하여 기도하는 만령절로 기념하여 지키고 있다). 오히려 그녀는 그 예배 중에도 교회가 사용하는 만령절이라는 단어의 애매함, 음울함, 검은 휘장, 엄숙한 느낌 등과 함께 믿음이 어린 채 떠나간 남편이 구원이나 받았을까 하는 걱정에 오히려 더 괴로워하고 있는 중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먼저 주님께 보낸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앞서 간 사랑하는 이들의 구원의 문제-죽음 이후의 상태-에 대해 생각하며 마음을 졸이거나 걱정해 본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의외로 교회는 세상을 떠난 그리스도인들이 지금 어디에, 어떤 상태로 있는지에 대해서 말을 제대로 해 주지 않는다. 까닭에 신자들은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아픔에 더해 망자의 죽음 이후의 상태에 대한 혼란스러움과 답답함마저 겪어 내야 한다.

톰은 말한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사후에 즉각적으로 그리스도와 함께 있게 된다고. 즉, 이 땅에서의 각자의 거룩한 삶의 성취의 정도에 따라 그 구원이나 사후의 상태-천국 혹은 연옥-가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이는 성공회를 포함한 서방 교회가 지난 오백 년간 성도의 죽음과 관련하여 은근히 암시하며 이야기하는 연옥과 같은 사후의 중간 상태를 드러내고 비판하는 것이다.

이 책 1~3장은 중세 이후 서방 교회의 성도, 영혼 그리고 죄인에 대한 전통적 견해의 문제점을 다룬다. 특히 성공회 교회력으로 11월 1, 2일에 지키고 있는 성인과 복자들을 기념하는 만성절과 평범한 그리스도인 망자들을 추모하는 만령절에 대해 비판한다. 연이어 기념하는 이 두 절기는 마치 성인들과 대다수의 평범한 그리스도인이 내세에는 나누어져 존재하는 인상을 준다. 즉 이 땅에서 유의미한 거룩함 혹은 그리스도를 닮은 모습을 얻은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은 각각 다른 존재 양식으로 내세에서 존재하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실제로 지난 500년 동안 서방 교회는 교회의 모습을 승리한 교회와 대망하는 교회, 싸우는 교회의 세 가지로 묘사해 왔다. 승리한 교회란 최후 승리를 거두고 이미 하늘의 중심에 이르러 지복직관(beatific vision)을 누리는 교회다. 이들은 현세에서 어느 정도 완전한 거룩함에 이른 것으로 믿어지는 성인들 - 에녹과 엘리야, 마리아, 베드로와 요한 등과 같은-이 그 구성원이다. 이들은 이 땅에 있는 성도들을 위해 하나님께 직접 중보를 한다.

대망하는 교회는 승리하는 교회로 바로 들어가지 못한 불완전한 대다수의 성도들이 지은 죄에 대한 형벌과 정화의 과정으로서 일정 기간을 보내는 교회이다. 지상의 교회는 이들을 위해 기도와 미사, 만령절의 절기 기도 혹은 면죄부를 사줌으로 그들의 기간을 단축시켜 줄 수 있다.

지상에서의 각자의 신앙의 성취에 따라 내세의 교회를 승리한 교회와 대망하는 교회로 나누어 범주화하는 이 방식은 지극히 합리적이고 체계적이며 인간적인 것처럼 보인다. 게다가 승리한 교회의 성인들이 지상 교회의 성도들의 기도를 중보해 주고, 지상 교회가 대망하는 교회를 기도와 미사 등을 통해 돕는다는 개념도 참으로 합리적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저자는 서방 교회가 교회를 세 가지 모습으로 나누어 생각해 온 것은 예수님이 가르치신 교회의 모습이 아니며, 중세에 시작된 - 연옥 교리에 영향을 받은 비성경적인 것임을 지적한다. 예수님과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말했던 교회는 오직 하늘/낙원에 있는 교회(승리하는 교회이자 대망하는 교회)와 싸우는 교회 둘 뿐이라는 것이다.

예수님은 가장 연옥이 필요할 것 같은 인간이었던 십자가 우편 강도에게 "오늘-며칠이나 몇 주 뒤가 아닌-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눅 23:43)"고 말씀하신다. 마 20:1~6의 포도원 품꾼 비유에서도 품꾼이 언제 와서 얼마만큼 일했느냐에 따라 그 삯에 차별을 두지 않으신다.

성화의 정도에 따라 그리스도인의 사후 상태가 달라지는 것이 결코 아니다.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 죄 문제를 해결받은 모든 신자는 성도로서 몸의 최종적 부활을 기다리며 죽음과 더불어 즉각적으로 낙원(천국)으로 들어가 주님과 함께 머물게 된다. 결코 연옥이나 대망하는 교회 같은 애매한 상태에 머무는 것이 아니다.

4, 5장에서는 하나님나라가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처럼 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길 기도하고 이 땅의 삶을 치열하게 살아 내셨던 주님의 뜻과는 달리 자꾸만 천국행만을 강조하는 듯한 내세 지향적인 (성공회 내의) '왕국절'이라는 교회력에 대해 지적한다.

"그이는 어디 있나요?"라고 부르짖게 만들었던 젊은 여인의 남편, 신실하셨으나 병마로 부르심을 받으신 내 어머니는 바로 지금 낙원(천국)에서 주님과 함께 계신다. 그래서 주님이 영광 중에 이 땅에 다시 임하실 때 부활한 몸을 입고 함께 임하게 될 것이다. 사실 주님의 십자가를 믿는 우리에게 죽음 이후의 삶에 대한 불확실성이나 연옥과 같은 그 어떤 모호함도 자리하지 않는다.

아니 자리할 수도 없다. 오직 주님의 십자가를 통한 속죄와 구원의 은혜만이 영광스럽게 드러날 뿐이다. 아울러 이 땅에서의 삶 역시 영원한 천국에 들어가기 위한 그런 과정적이고, 불에 타 없어져 버릴 그런 것이 아니라 영광스런 주님의 다시 오심과 함께 영원한 하나님나라가 펼쳐질 현장인 것이다. 그 때문에 우리는 이 땅에서의 삶을 사랑하며 더 치열하고 의욕 넘치게 살아 내야 한다.

불과 120페이지밖에 되지 않은 얇은 책이지만 내 어머니의 죽음 이후를 생각함에 있어 책이 주는 위로는 적지 않았다. 왜 사람들이 "존의 시대는 가고 톰의 시대가 왔다"고 하는지, 왜 영국 기독교 서점에서 그의 책들이 한 코너를 차지할 정도인지를 맛볼 수 있어서 좋았다.

굳이 아쉬운 점을 덧붙인다면 이 책이 영국 성공회라는 특정 전통을 배경으로 만성절(성자들에게 기도하는 날), 만령절(망자들을 위한 예배드리는 날), 왕국절, 대림절 등과 같은 교회력에 대한 얘기가 자주 나와서 좀 생소했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런 점들도 그동안 잘 몰랐던 성공회와 그 교회력들을 배우게 해 주는 좋은 디딤돌이었다. 죽음 이후에 대해 듣고 보니 이 땅에서 힘차게 살아야 할 이유도 알 것 같다. 내게 주어진 삶과 믿음이, 주님의 사랑이 감사하다.
정연우 / ESF 간사, 로고스서원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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