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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년째 주 3회 투석 죽음과의 아름다운 투쟁 “아픔도 축복이지요”
   글쓴이 : 바이블넷     조회 : 8879    

온누리교회 하용조 목사의 ‘미래 세대를 위한 제언’

귀를 시원하게 해주는 얘기 꾸러미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흥미진진하다. 육신의 고통 속에서도 늘 새로운 상상력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꿈쟁이(비저너리)’다. 그가 설교할 땐 엄청난 파워가 느껴진다. 하지만 설교 직후 그의 모습은 영락없는 환자다. 순간을 위해 모든 진액을 뽑아낸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종합병동’이다. 지금도 주 3회 투석을 해야 한다. 그렇게 한 지 5년이 넘었다. 죽음의 문턱에 간 적도 있었다. 지난달 1일에는 주일예배 설교 도중 강단에서 내려오기도 했다. 온누리교회 하용조(66) 목사의 이야기다.

이번 만남에서도 그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새벽집회를 직접 인도하는 등 빠듯한 스케줄을 소화한 탓에 피곤함이 깊이 배어 있는 듯했지만 지칠 줄 모르는 에너지를 뿜어냈다. 인터뷰는 건강 얘기로 시작됐다. “전 요즘 ‘아픔도 축복’이라는 걸 묵상해요. 암이 재발하지 않는 한 11월경 이식수술을 할 예정입니다. 그런데 그건 중요하지 않아요. 어떤 상태든지 저는 ‘하용조 행전’이 아니라 ‘성령 행전’을 쓰고, 또 쓸 거라는 겁니다.”

하 목사는 확신에 차있었다.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와 베트남 호찌민에 온누리 비전교회가 세워졌다고 밝힐 땐 얼굴이 더 환해졌다. 그러면서 꿈 얘기를 이어갔다.

“요즘 기도하는 목회(교인), 찬양하는 목회(교인)를 꿈꿉니다. 순간적 감흥에 따른 열정이나 영성은 지속력이 매우 약합니다. 18세기의 강력한 선교공동체, 모라비안 교도들은 선교사 1명을 파송하기 위해 100곡의 찬송을 불렀다고 해요. 그런데 한국교회에서 들려오는 수많은 기도와 찬양은 하나님과 작곡·작사가 의도와는 매우 다른 것 같아 걱정입니다.” 자기만족형 찬양이나 기도가 적잖다는 지적이다.

그는 교회와 성도의 기본기도 들었다. 그리스도인으로서의 기초 체력이 허약한데 어떻게 순교적 신앙을 기대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하 목사는 이 때문에 청년·대학생, 초·중·고교생 등 미래 세대를 향해 더 큰 비전을 갖게 됐다고 밝혔다. 다음 세대가 하나님을 마음껏 높일 수 있는 물적 터전과 전천후 ‘매트릭스’ 시스템을 준비 중이라고 했다. 우선 올 여름 온누리교회 대학생과 청년 1만명을 선교 선봉대로 아시아 각지로 보낼 예정이다. 이에 앞서 오는 24∼25일 서빙고 온누리교회에서 예배·선교 콘퍼런스 ‘카운트다운’을 개최한다. 새벽이슬 같은 젊은이들이 주님 오실 날을 준비하며 글로벌 선교시대를 열어가도록 초석을 놓겠다는 심정에서다. 26일에는 장충체육관에서 ‘블레싱 아시아’ 선교 파송식을 이어간다.

“우리 모두에게 ‘카운트다운’이 시작됐습니다. 주님 오실 날이 우리에게 달려있습니다. 복음 전파는 기성세대만의 몫이 아닙니다.”

하 목사는 오늘의 위기를 특정 교회, 특정인에게 돌리려는 건 무책임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가정, 교육, 캠퍼스, 사회가 죽어가고 있는데 ‘네 탓이다’ ‘우리는 괜찮다’ 등의 논쟁이나 벌이고 있으니 해결 기미가 보이지 않는 겁니다. 기복주의만큼 나쁜 게 무조건적인 비판입니다. 일방적 개혁으로 시대의 아픔을 치유했다는 교회사 기록은 없어요. 지금은 환부를 도려내되 탈나지 않도록 감싸고 새살이 돋아나게 해야 할 때입니다.”

하 목사는 “목회자는 덜 알려지는 게 좋다. 평신도들은 더 유명해져야 한다”며 “그러나 그 유명세는 특정인의 세상적 브랜드나 스펙 때문이어서는 안 된다”고 했다. 그는 “젊은이들은 자기만의 스펙관리는 한계체감의 법칙이라는 늪에 빠질 수 있음을 자각하고 하나님과 공동체를 위해 위대한 일을 시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준규 검찰총장이 온누리교회에 출석해요. 그분은 중학생을 위한 주일학교 교사가 되겠다며 2년째 자원봉사를 하고 있어요. 이게 영향력입니다. 미래 세대는 겸손히 주님의 길을 가고자 애쓰는 이런 리더들에게서 예수님의 이미지와 메시지를 발견하게 됩니다. 지속가능한 행동과 실천력을.”
목사, ‘투잡’을 선택하다
“지금 한국교회의 혼란은 선한 변화위한 통과의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