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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블레셋 도시 ① 에그론(텔 미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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앗수르 속국이었지만 올리브유 생산으로 도시 발전

지난 2회에 걸쳐 우리는 성서시대 이스라엘의 주변국 중 가장 강렬하게 이스라엘과 대적했던 블레셋 사람들의 기원과 흥망성쇠를 살펴보았다. 이제 우리는 블레셋 사람들이 살았던 주요 도시 가사, 아스돗, 아스글론, 가드, 에그론(여호수아 13:3)을 찾아가 보려고 한다. 먼저 블레셋 땅과 남왕국 유다의 경계지역이었던 에그론(사사기 1:18)에서 시작한다. 특히 에그론에서 발견된 ‘아기스 신전 헌정비’는 성서와 성서 외 자료의 관련성을 보여줄 수 있어 성서와 고고학을 이야기하는 데 중요한 유물이 되고 있다.

학자들은 에그론의 정확한 위치에 대해 다양한 의견들을 제시해왔다. 그중에서 히브리대학교 나베 교수는 1957∼58년에 예루살렘에서 서남쪽으로 35㎞ 떨어진 현재 텔 미크네를 블레셋의 에그론이라고 주장했다. 히브리대학교의 도단 교수와 올브라이트 고고학 연구소 소장 기틴은 1981년부터 15년간 텔 미크네를 발굴했고 이곳을 에그론으로 굳게 믿었다. 유물들과 유적지 전반에 걸쳐 이곳이 블레셋 지역이란 사실에 의심할 여지가 없었지만 어디에도 이 도시의 지명을 정확히 보여주는 유물은 없었다. 사실, 이스라엘의 유적지들 중에는 아직도 성서 속의 장소와 일치하지 않는 장소들이 있어 지명을 밝혀 줄 수 있는 유물의 발견이 절실했다. 하지만 기적은 발굴의 마지막 시즌에 일어났다.

1994∼96년, 텔 미크네의 D구역에서는 주전 8∼7세기경 사용되었던 거대한 신전이 발굴되었다. 발굴 보고서에 따르면, 주전 8세기까지만 해도 텔 미크네는 4만㎡의 소규모 도시였다. 그러나 8세기 말 앗수르의 사르곤이 이곳을 점령한 이후 도시는 오히려 35만㎡의 거대한 도시로 변했다. 도시가 확장되고 엄청난 부를 누릴 수 있었던 이유는 올리브유 생산 때문이었다. 에그론은 당시 고대 근동지역에서 가장 큰 올리브유 생산지였다. 그 증거로 도시 전반에 걸쳐 올리브유 압착기에 사용된 것으로 보이는 거대한 돌로 만든 추들이 발견되었다. 100여개의 올리브유 압착기가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으며 연간 1000t 이상의 기름을 생산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곳에서 생산된 올리브유는 가나안 땅은 물론 이집트와 앗수르 그리고 고대 근동 전역으로 수출되었다.

에그론 신전은 올리브유 산업의 발전과 함께 건축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건물의 형태는 앗수르의 신전형태를 따르고 있지만 동시대의 가나안땅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형태이다. 건물은 정면과 측면에서 들어갈 수 있도록 입구가 있었으며 각각 돌 하나로 만든 4m 길이의 문지방이 놓여 있다. 신전에서는 앗수르의 제사용 용기를 비롯해 수백 개의 깨지지 않은 다양한 그릇들이 발견되었다. 그런데 앗수르의 유물뿐만 아니라 이집트의 영향이 드러나는 유물들도 발견되었다. 여왕의 모습으로 조각된 상아에는 이집트의 왕 메르넵타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는가 하면 23m 길이의 금으로 만든 이집트의 우라에우스(코브라) 등이 발견되었다. 이러한 유물들은 성서에서 말하고 있는 것처럼(예레미야 42:14∼19, 에스겔 17:11∼24) 에그론을 비롯한 블레셋 지역들이 주전 7세기 말 이집트와 상당히 긴밀한 관계에 있었고 이집트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았다는 증거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 신전에서 발견된 유물들 중 가장 중요한 유물은 96년 발견된 ‘아기스 신전 헌정비’이다. 96년, 발굴팀은 발굴을 마무리하기로 결정했고 지금까지 발견된 신전의 전체 형태를 드러내고 모습을 재현하는 것을 최종 목적으로 하였다. 이 마지막 시즌에, 바로 이 신전에서, 발굴에 참여했던 필자(임미영 박사)는 아직도 이 석비의 발견 당시 모습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8주간의 발굴 중 7주차에, 발굴 팀은 신전의 윤곽을 보다 정확히 하기 위해 신전의 측면 입구 문지방 바로 옆에 뒤집어진 채 서 있는 돌 하나를 치우기로 결정했다. 돌을 뒤집는 순간 하늘을 향해 가득히 기록된 히브리어 글자들이 드러났다.

이 석비는 현재 주전 7세기 중반으로 연대가 측정되고 있으며 5열로 글이 쓰여 있다. 석비의 내용은 여신 Ptgyh가 왕 아기스와 그의 땅을 축복하여 주기를 비는 신전 헌정비이다. 이 석비가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상당히 크다. 첫 번째로 아기스는 그 스스로를 파디의 아들, 이스드의 아들, 아다의 아들, 야이르의 아들, 에그론의 통치자라고 정의내리고 있다. 오랜 기간 동안 텔 미크네와 에그론의 관련성에 대해 파헤치고자 발굴에 참여했던 이들에게 마치 마지막 시즌에 대한 보상이라도 하려는 듯 에그론의 이름이 밝혀진 것이다. 두 번째로 성서와 성서 외의 역사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발견이다. 아기스는 다윗이 사울을 피해 가드로 도망갔을 때 가드 왕의 이름이었다. 그러나 이 신전이 다윗 시대보다 적어도 250년은 후대의 건물이기에 석비를 세운 아기스와 동일 인물로 볼 수는 없다.

하지만 아기스라는 이름은 히브리어 이름이 아닌 블레셋의 이름이다. 그렇다면 주전 7세기까지 에그론에서는 블레셋 사람들이 여전히 그들 자신의 전통적인 이름을 고수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석비의 주인 아기스와 그의 아버지 파디는 주전 7세기 앗수르의 기록들에도 등장하고 있어 이들의 역사성이 보다 증명되었다. 아버지 파디의 경우, 열왕기하 18장 8절에서 히스기야가 종교개혁을 일으켰을 때 “블레셋 사람들을 쳐서 가사와 그 사방에 이르고”라고 간단히 보여주고 있지만, 앗수르의 왕 산헤립(주전 705∼701년) 당시 히스기야가 산헤립에게 대항하기 위한 연맹에 가담하지 않은 에그론의 왕 파디를 감옥에 가두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아기스는 앗수르 이름으로는 잌카수라 불리는 인물로 앗수르의 왕 에사르하돈(기원전 680∼669년)의 궁전 건축을 위해 자재를 제공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또한 석비에서 아기스는 스스로를 왕이 아닌 “sar(사르)” 즉 통치자로 부르고 있어 에그론이 당시 독립국이 아닌 작은 속국에 불과했던 사실을 보여준다. 네 번째로 에그론에서 잘 알려지지 않았던 어느 여신이 숭배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기록된 여신의 이름은 Ptgyh로 가나안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신으로 히브리어 이름이 아니다. 학자들은 이름의 기원을 인도 유럽 어족일 것이라고 추측하고 블레셋의 고향인 에게문명의 여신 중 하나라고 보고 있다. 적어도 신전의 크기를 가늠해 볼 때 이 여신이 에그론에서 미친 영향이 상당히 컸던 것으로 보인다. 참고로 열왕기하 1:2∼16에 나오는 에그론에서 숭배된 바알세붑이라는 신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알려진 바가 없다.

비록 앗수르의 속국이었고 남왕국 유다와의 경계선상에 있어 영토전쟁에 시달렸지만 주전 8∼7세기 에그론은 올리브유 생산으로 생긴 부로 도시를 확장하고 거대한 신전을 지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과 늘 대적자였던 블레셋 사람들의 운명은 오랫동안 지속되지 못했다. 에그론 역시 성서에서 점차 사라져갔다. “가사가 버리우며 아스글론이 황폐되며 아스돗이 백주에 쫓겨나며 에그론이 뽑히우리라. 해변 거민 그렛 족속에게 화 있을진저 블레셋 사람의 땅 가나안아 여호와의 말이 너희를 치나니 내가 너를 멸하여 거민이 없게 하리라.”

공동 집필

임미영 박사


<평촌이레교회 협동목사 , 서울신학대학교, 한신대학교, 장신대학교 강사>

김진산 박사

<새사람교회 공동목회, 서울신학대학교 호서대학교 건국대학교 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