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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니게(시돈과 두로) 사람들 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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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그리스 등에 포도주와 옷감 등 수출한 해상무역 달인

성서는 이스라엘 사람들의 해상활동에 대해 많은 증거를 보여주지 않는다. 남쪽 해안은 블레셋 사람들이 지배하고 있었고 북쪽 해안은 배를 정박시키는 데 필요한 지형적 조건을 갖추고 있지 못했기 때문이다. 요나가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탔지만(요나 1:3) 이스라엘 백성들이 주도적으로 해상활동을 했다는 충분한 증거가 되지 못한다. 주전 30년경 신약성서 시대의 헤롯대왕이 가이사랴(Imperial City)를 건설하면서 지중해 해상활동이 활발해졌을 뿐이다.

그렇다고 이스라엘 사람들은 해상활동을 아예 포기하지 않았다. 솔로몬 시대부터 적극적인 외교정책을 강화하면서 이스라엘의 해상무역은 활발해졌다. 두로의 히람 왕이 솔로몬의 이스라엘을 적극적으로 도울 때 해상무역에 필요한 배를 만들어 주었고 항구를 건립해 주었다(열왕기상 9:16; 10:22). 솔로몬과 히람의 경제블록은 이스라엘의 경제적 부흥을 가져왔고 외교적 안정을 이루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하지만 이것은 이스라엘 사람들의 신앙생활에 커다란 위기를 가져왔고, 이스라엘 사람들의 신앙적 외도는 급기야 예루살렘 성전의 멸망이라는 큰 불행을 낳게 했다. 이러한 현상에 대해 주전 8세기의 예언자 이사야는 두로에 대한 심판을 예언했고(이사야 23:1), 주전 6세기의 예언자 에스겔 역시 두로에 대한 심판을 선포했다(에스겔 27:3).

베니게 지역의 배는 주전 2500∼2000년 사이 이집트의 자료에서 이미 ‘비블로스의 배’라는 의미를 가진 ‘kbn’이라 불리는 선박으로 표현된 바 있다. 이집트에서는 이 시기에 이미 레바논의 백향목이 사용된 흔적이 발견되었다.

이러한 목재는 당시 육로로는 운반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백향목은 비블로스의 배에 실어 해양으로 이동했을 것이다. 주전 1400년경 이집트의 떼베, 케나몬의 무덤 벽화에는 이집트의 배와는 확연히 다른 형태의 배와 뱃사람들이 묘사되어 있다. 이 배에서 내려지고 있는 항아리들은 주로 베니게를 포함한 가나안 땅의 항아리로, 포도주를 담는 용도로 사용되는 것이었다. 이러한 고대의 모습을 보여주는 놀라운 발견이 터키 앞바다 울루부루룬에서 일어났다.

이곳에서는 주전 1200년경 난파된 배 한 척이 발견되었는데 항아리와 키프루스의 구리괴 그리고 여러 가지 무역용 상품이 가나안의 것들과 상당히 일치하여 이 배가 베니게 지역을 떠나 벽화 속의 배처럼 이집트와 그리스 등으로 무역을 위해 항해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더불어 최근 하버드대 스태거 교수는 아스글론에서 서쪽으로 50㎞ 정도 떨어진 400m의 수심 아래서 주전 8세기의 베니게 배 두 척을 발견하였다. 배의 길이는 16m로 가나안의 포도주 항아리로 가득 차 있었으며 각각 12t 이상의 포도주를 싣고 있었다. 이 배들은 아마도 이집트나 카르타고를 향해 항해하다가 시편 48:7에서 다시스의 배를 깨뜨렸다는 매서운 ‘동풍’과 같은 태풍에 의해 난파한 것으로 보인다.

바닷물 속에 오랜 시간 머물러 있었던 배들이 무엇을 싣고 있었는가는 재현할 수 있었지만 배를 만드는 데 사용한 목재가 이미 녹아 없어졌기 때문에 윗부분을 재현하기는 쉽지가 않았다. 하지만 우리는 이 배의 모습을 앗수르의 벽 부조와 성문 장식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특별히 그리스 사람들은 베니게의 선박을 히포이(hippoi)와 갈로이(galloi)라 불렀는데 히포이는 말이란 뜻으로 아마도 선두와 선미를 말 모양으로 조각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앗수르의 유적지 발라왓에서 발견된 성문은 앗수르의 전쟁과 승리의 모습을 담은 여러 청동 판을 붙여 꾸며놓은 것이었다. 이 판들 중에는 두로의 모습 역시 묘사되어 있는데 두로는 해안가에 세워진 도시로 두로 사람들이 ‘히포이’ 배에 조공품을 실어 나르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욕조라는 뜻을 가진 갈로이 배는 목욕을 좋아했던 그리스 사람들 눈에 마치 그들의 욕조처럼 보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앗수르의 산헤립이 세운 니느웨 궁전 벽에 남겨진 벽 부조에서는 두 줄로 앉아 노를 젓고 있는 베니게인들이 보이는데 아마도 이러한 방식으로 항해하는 것은 베니게인들이 처음이었다고 보고 있다.

베니게 사람들이 가나안과 베니게 지역에서 실고 나간 수출품에는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포도주가 가장 최상의 상품이었을 것이다. 이집트의 경우 기후조건상 양질의 포도를 생산하지는 못했고 포도주의 대부분을 가나안에서 수입했다. 난파선과 이집트의 벽화에서도 발견되는 것처럼 포도주는 항아리에 담겨 있었다. 두로와 시돈 사이 중간 지점에 위치해 있는 사르밧에서는 주전 1400∼400년 토기 가마를 비롯한 토기 작업용 도구들과 저장용 항아리와 다양한 토기들이 대량으로 발견되어 큰 규모의 토기 공장이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곳에서 만들어진 저장용 항아리들은 포도주를 담아 수출하는 데 사용되었다.

산업도시였던 사르밧은 토기뿐만 아니라 염색으로도 유명했고 특히 청색과 자색 염색은 베니게의 수출 품목 중 효자상품의 하나였다. 성서에서도 ‘자색 청색 홍색 실과 가는 베로 일을 잘하는’ 두로 사람(역대하 2:14)이 성전과 궁전을 건축하는 데 참여했다. 이 특별한 색깔을 만들어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 염료는 성서시대 고가의 색깔로 성전을 꾸미는 것과 대제사장(출애굽기 28:6, 15, 31)이나 신전의 신상(예레미야 10:9) 옷을 만드는 데 사용했다. 앗수르의 왕들 역시 청색과 자색으로 염색된 다양한 옷감이나 의복을 전쟁의 전리품으로 가지고 온 것으로 보아 당시 그 가치가 얼마나 높았는가는 상상해 볼 수 있다. 성서의 묘사를 볼 때 청색과 자색을 분리하고 있어 두 색이 다른 색임에는 분명하지만 오랜 세월 사라졌던 색들을 정확히 구별해 내기는 어렵다.

성서의 청색과 자색은 베니게 지역의 해안 바위에서 서식하는 고둥 껍질에서 추출해내는 것이다. ‘Murex’종의 고둥을 모아 껍질을 부수고 소금을 넣고 끓인 후 태양 아래 둔다. 이렇게 하면 아가미 밑에서 나오는 분비물이 자색 혹은 청색으로 변하게 된다. 사르밧을 비롯하여 두로, 시돈, 하이파와 악고 사이의 텔 케이산 같은 유적지에서는 껍질만 있는 고둥더미들이 발견되는데 염색약을 만들어낸 후 버려진 쓰레기더미다. 8000개의 고둥을 끓여 나오는 염료는 겨우 1g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얼마나 많은 고둥이 소요되었을까는 강조할 필요가 없다. 사르밧에서는 자색의 흔적이 묻어 있는 항아리 조각과 염색용으로 사용된 것으로 보이는 큰 통이 발견되어 이곳에서 염료를 만들고 섬유를 염색해 수출했음을 추측할 수 있다.

베니게는 자신들이 생산한 물품만을 수출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와 이집트, 이스라엘, 앗수르 그리고 여러 나라들의 중간상인 역할도 했다. 또한 가져온 물품을 개량하여 다시 재판매하기도 하였는데 이집트에서 이미 유리를 만들었지만 주전 7세기 베니게에서는 푸른빛이 도는 유리병을 만들었다. 여기에 오일과 향료를 담아 값비싼 수출품을 만들어냈다. 또한 아시아와 아프리카 지역의 사냥개들을 각 지역에 맞게 개량하여 보다 우수한 품종의 사냥개를 수출했다.

<베니게 사람들 계속>

공동 집필

임미영 박사


<평촌이레교회 협동목사 , 서울신학대학교, 한신대학교, 장신대학교 강사>

김진산 박사

<새사람교회 공동목회, 서울신학대학교 호서대학교 건국대학교 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