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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십자가의 길((Via Dolorosa)

십자가의 길((Via Dolorosa)

십자가의 길 위에 있는 14

십자가의 길을 라틴어로 비아 돌로로사(Via Dolorosa)’ 라고 부르며 '비아(Via)'의 뜻은 이며 돌로로사(bbDolorosa)’의 뜻은 수난, 고난, 슬픔, 고통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 길은 본디오 빌라도가 예수님에게 사형 언도를 내렸던 빌라도의 법정에서부터 시작하여 골고다 언덕에 까지 이르는 약 800m 정도의 길이를 가지고 있다. 이곳 십자가의 길에는 모두 14처가 있으며, 이 장소들은 18세기에 와서 확정된 것이며, 일반적으로 순례자들이 걸어가는 비아 돌로로사는 14세기 프란체스코 수도사들에 의해서 확정된 것이다.

이 길은 빌라도 법정에서부터 시작하며 골고다 언덕에서 십자가 상에서 구속을 완성하시고 무덤에 장사되시고 부활하신 거룩하고 엄숙한 길인 것이다. 독생하신 하나님께서 어린양의 피로써 성도들의 구속을 완성하기 위해서 십자가를 지시고 수난의 길을 걸어가셨던 길이다.

십자가의 길인 14처에 대해서 살펴보기로 한다.

1 예수께서 빌라도의 법정에서 십자가형을 선고 받은 장소(19:13-16)

안토니아 성채(빌라도 법정)

예수님당시에 로마 총독부는 가이사랴에 있었으며 유대인의 명절이 다가오면 유대인 남자들이 예루살렘 성전에 와서 제사를 지내야 하므로 혹시 민란이 나지 않을까 염려하여 예루살렘에 와서 파견 근무를 하였다. 당시 성전산 북쪽에는 헤롯 대왕이 자기 친구인 마가 안토니를 위해서 안토니아 성채를 지었었다. 이 안토니아 성채는 네 개의 높은 망대를 가지고 있었으므로 성전산에서 제사 드리는 유대인들을 감시하기에 좋은 위치에 있었다. 그러므로 이 요새에는 로마 군병들이 거주하였으며 빌라도의 법정도 이 안토니아 요새에 있었을 것으로 주장되어 진다.

빌라도가 박석(The Stone Pavement, 아람어로 가바다)이라는 재판석에 앉아 재판을 하였다. 빌라도의 법정이 있었던 안토니아 성채의 거리에는 현재 아랍 초등학교인 알-오마리엘 학교가 있으며, 이 학교에서 볼 수 있는 이슬람의 미네렛 탑의 이름은 전통적으로 안토니아 탑이라고 불리 워 진다. 혹자는 빌라도의 법정이 현재의 욥바문 근처에 있었던 헤롯 궁궐에 있었을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거의 모든 순례자들은 안토니아 성채부터 십자가의 길을 시작하며 매주 금요일 오후 3시가 되면 프란체스코 수도회의 주관으로 예수님께서 걸어가신 십자가의 길을 세계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모여서 나무 십자가를 지고 고난의 길을 재현한다.

2 ,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고가신 장소이다(19:17).

채찍질 교회

에케 호모 교회

현재 제2처 안에는 두 개의 교회가 있다. 하나는 채찍질 교회(The Franciscan Chapel of the Flagellation)이고 다른 하나는 선고 교회(The Chapel of Condemnation)이다. 채찍질 교회는 가톨릭 성경학교 교정에 있으며, AD 1839년에 지어졌으며 AD 1929년에 십자군 시대의 건물로 바뀌었다. 제단 뒤쪽의 스테인드글라스에는 예수님께서 채찍에 맞으시는 모습이 있다(19:1).

선고 교회는 AD 1903-1904년에 비잔틴 시대의 건물로 재건되었으며 이곳에서부터 예수님께서 나무 십자가를 지시고 걸어가기 시작한 장소이다(19:16).

선고 교회에서 서쪽으로 약간만 가면 에케 호모 교회(The Church of Ecce Homo)가 있다. 이 교회는 시온 수녀원에서 관리하고 있으며 안토니아 요새의 북쪽 부분에 해당되는 곳이다. 라틴어로 에케 호모는 "보라 이사람이로다(Here is the man)" 이라는 뜻이며 빌라도가 채찍질과 조롱을 받으시고 나오시는 예수님을 가리켜 한 말이다(19:5). AD 135년에 로마 황제 하드리안은 이곳에 세 개의 아치로 된 개선문을 만들었는데 중앙의 큰 아치는 일반도로위에 있고 작은 아치 하나는 에케 호모 교회 지하 예배당에 있다.

시온 수녀원 지하에는 AD 135년에 로마 하드리안 황제가 만든 것으로 추정되는 큰 돌로 만든 포장 도로(Lithostrotos, Praetorium, The stone pavement)가 있으며 이 돌 위에는 로마 군병이 놀았던 왕의 놀이(The King's Play)’의 무늬가 새겨져 있다. 이 포장도로는 AD 135년경의 것이지만 하드리안 황제가 예루살렘을 알리아 카피톨리나라는 이방 이름의 도시로 다시 만들면서 안토니아 성채의 큰 돌을 가져다가 이 광장을 만든 것으로 추정한다.

3 , 예수님께서 십자가 아래 처음으로 쓰러진 장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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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 1948년에 세워진 폴란드 예배당이 위치하고 있다. 정문 위에는 다데우스 지엘린스키가 조각한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고 넘어지시는 모습이 부각되어 있다.

4 , 예수님께서 어머니 마리아를 만난 장소이다.

4

AD 1881년에 지어진 아르메니아 가톨릭교회가 세워져 있다. 십자가의 길 3, 4, 5처는 치즈 골짜기(중앙 골짜기)를 지나가므로 14처 중 가장 낮은 부분에 속한다.

5 구레네 시몬이 억지로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지고 간 장소(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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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 1895년에 지은 프란체스코 예배당이 위치한다. 사도 바울은 루포의 어머니를 내 어머니라고 말할 정도로 구레네(리비아) 시몬의 자녀들과 부인은 후대에 큰 축복을 받아서 신앙생활을 잘 하였다(16:13).

6 , 베로니카 여인이 예수님의 얼굴을 닦아준 장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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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작은 수녀원에 속하며 AD 1895년 지어진 성 베로니카의 교회가 위치한다. 이 교회는 베로니카의 집 위에 지어졌다고 한다. 베로니카라고 하는 여인이 예수님의 얼굴을 수건으로 닦아 드렸는데 그 수건에는 예수의 얼굴 형상이 찍히었다는 전승이 전해 내려온다.

베로니카 여인은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다가 예수님의 옷 가를 만지므로 고침 받은 여인이라고 한다(5:25-34).

7 , 예수님께서 두 번째로 넘어진 장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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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 당시에는 이 장소부터 성 밖으로 나가는 심판의 문이 있었으며 이곳을 지나면서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셔야할 장소인 골고다 언덕을 바라보시면서 걸어가셨을 것이다. AD 1875년에 가톨릭에서 구입한 건물에 예배당이 위치한다.

8 예수께서 울고 있는 예루살렘 여인들을 위로하신 장소(23:2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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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정교회에 속한 성 카라람보스 수도원의 벽위에 라틴 십자가로 표시되어 있다. 십자가 좌우에는 ‘NIKA'라고 쓰이어져 있는데 그 의미는 예수 그리스도는 승리이시다라는 뜻이다. 예수님께서는 매우 힘들고 지친 상태이셨지만 울고 있는 예루살렘 여인들을 위로해 주신 장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