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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솔 ①

하솔 ①

[고고학으로 읽는 성서-(2) 예루살렘을 향하여] 하솔 ① 기사의 사진

이스라엘에 정복되기전 갈릴리 북방나라들 중심이었다

하솔, 그 모든 나라의 머리


2005년 유네스코(UNESCO)는 이스라엘의 유적지들 가운데 성서 고고학 발굴지역인 므깃도, 브엘세바, 하솔을 세계문화유산으로 선정했다. 그 중 하솔은 북부 갈릴리 지역의 유적지 중 가장 큰 곳으로 40m의 높이에 0.1㎢ 면적의 상부도시(upper city)와 0.8㎢면적에 달하는 하부 도시(lower city)로 구분되어진다. 하솔의 이름은 이미 주전 18세기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마리라고 불리는 유적지에서 발견된 문서에 이미 등장할 정도로 가나안의 주요 도시였다. 또한 이집트에서 발견된 주전 14세기경에 기록된 아마르나 문서에 의하면 당시 하솔에는 압디 티르쉬(Abdi Tirshi)라는 왕이 있었고 가나안의 주요 왕으로서 이집트에 충성을 바쳤다. 성서 역시 여호수아와 싸운 가나안 북방의 왕들 중 “하솔은 본래 그 모든 나라의 머리였다”(수 10:10)고 말하고 있어 이스라엘이 하솔을 정복하기 전 가나안에서의 입지를 알 수 있다.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민족이 여리고를 점령하고 아이, 기브온, 그리고 예루살렘 주변 지역을 취한 소식은 가나안 북방 갈릴리 지역으로 전해졌다. 이에 이스라엘과 싸우려고 하솔 왕 야빈은 북쪽 산지 왕들을 부추겨 해변의 수많은 모래 같은 병사와 심히 많은 말과 병거까지 동원하였다. 여호수아와 그의 군사는 기습 공격을 감행하여 오히려 전쟁에 승리했다. 하솔의 왕은 여호수아의 칼날에 죽었으며 하솔은 불살라 진멸하였고 호흡이 있는 자는 하나도 남기지 아니하였다(수 11:1∼15).

하솔에 대한 고고학적 관심

하솔에 대한 관심은 이미 1926년 존 가르스탕에서부터 시작되었다. 하지만 가르스탕은 발굴이라기보다는 조사 단계에 그쳤다. 주요 발굴은 1955∼1958년과 1968년 히브리 대학교 이갈 야딘 교수에 의해서 이루어졌다. 야딘 교수는 거대한 하솔을 발견했다. 하부 도시 전체에 퍼져 있는 주전 2000∼1200년경의 부유했던 요새화된 도시와 가나안 신전들의 모습은 세상을 놀라게 했다. 18×33m 크기의 신전 앞마당에는 1.8m 길이의 현무암을 깎아 만든 사자상 두 마리가 성소를 지키고 있었다. 성전 내부에는 가나안의 신 바알 상징이 조각된 석상과 함께 헌물을 바치는 석탁들도 발견되었다. 또 다른 성소 구역에서는 우리가 주상 혹은 입상이라고 보통 번역한 돌을 깎아 만든 가나안의 신상 마쩨봇들도 발견된 바 있다. 특별히 이 성소 구역에서는 제의에 사용된 것으로 보이는 점토로 만든 가면과 은으로 만든 홀이 함께 발견되었다. 이 성소 구역들은 주전 1200년경 불살라 파괴되었던 흔적 또한 여실히 드러난 바 있다.

야딘 교수가 죽음에 앞서 가장 안타까워했던 것은 하솔에서 야빈의 궁전과 궁정 문서가 보관되었을 서고를 발견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만큼 야딘은 하솔에 대한 관심을 멈추지 않았다. 그의 소원은 그의 제자이자 히브리대학교 고고학 교수인 암논 벤-토르에 의해서 완성되고 있다. 벤-토르 교수는 1990년부터 현재까지 스페인의 콤프루텐스 대학교와 함께 하솔의 발굴을 계속해서 지휘하고 있는데 주전 1200년경 대화재로 파괴된 궁전은 물론 저장고와 여러 설형문자로 기록된 문헌들도 발견한 바 있다.



하솔왕 야빈의 궁전

궁전의 전체 모습은 아직까지도 다 발굴되지 않아 그 크기를 정확히 알 수는 없으나 궁전의 동쪽 입구 길이만 적어도 39m가 넘으며 무너졌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서 있는 벽의 높이만도 2.4m가 넘는 것으로 보아 궁전의 크기가 얼마나 컸을까는 상상해 볼 수 있다. 궁전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두 개의 거대한 기둥을 지나 포장된 안뜰을 통과해야만 했을 것이다. 궁전 입구에는 기둥이 서 있었던 받침들이 남아 있다. 왕좌가 있었던 중앙 홀의 바닥은 레바논의 백향목이 깔려 있었고 진흙으로 쌓은 벽들은 현무암을 널빤지처럼 깎은 판석들로 입혔다. 궁전 안에서는 상아 유물, 청동 칼들, 보석을 비롯해 왕 혹은 신의 모습을 표현한 것으로 보이는 청동상도 발견되었으며 특별히 이스라엘에서 현재까지 발견된 주전 2000∼1200년경에 현무암으로 만들어진 가장 큰 사람의 모습을 한 석상 또한 발견되었다. 석상의 높이는 90㎝에 달한다.

벤-토르 교수에 의해 발견된 문서 중에는 주전 18∼17세기경 기록된 함무라비 법전과 유사한 법도 있는데 ‘눈에는 눈’이란 법문이 있어 흥미롭다. 더불어 주전 1200년경에 기록된 문서들 속의 이름 중 우리의 시선을 끄는 것은 ‘입니 아디(Ibni Addi)’라 기록된 왕으로 입니는 야빈과 어원이 같은 이름이다. 학자들은 ‘입니’를 가나안 북쪽 산지 왕들과 연합하여 여호수아와 전쟁을 치를 하솔 왕 야빈이라고 보고 있다. 이 문서를 통해 야빈이 당시 하솔을 통치했던 가나안의 강력 군주였음이 입증되었다. 그러나 문제는 사사기 4∼5장에서도 바락과 싸운 장군 시스라가 섬겼던 하솔 왕의 이름도 야빈이라는 것이다. 이 전쟁에서 야빈은 이스라엘에 패했고 전쟁에 대한 기쁨으로 여호와를 찬양한 드보라의 노래가 탄생하기도 했다. 대부분의 학자들은 사사기의 야빈과 여호수아의 야빈이 동일 인물이라고 생각한다. 이스라엘의 가나안 정복 전쟁 중 동시대에 일어난 일을 각각 다른 주인공의 시점에서 바라본 하나의 전쟁일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다. 벤-토르 교수는 미래의 발굴을 통해 야빈과 하솔의 이야기를 풍부하게 해 줄 서고가 발견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벤-토르 교수의 발굴에서는 이 궁전이 주전 1230년경 화재로 파괴되었으며 이로 인해 1m 가까이 되는 잿더미 층이 생겨난 것이 발견되었다. 텔아비브 대학교의 핑켈슈타인 교수를 비롯한 몇몇 학자들은 이 파괴가 주전 1300년경 가나안 땅으로 원정을 나온 이집트의 왕 세티 1세에 의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혹은 주전 1275년경 람세스 II세가 시리아의 가데스에서 전투를 하러 가면서 혹은 전쟁에서 돌아오면서 파괴한 이집트의 흔적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벤-토르 교수는 파괴의 방법이 이집트의 전쟁 흔적과 유사하지 않으며 더불어 하솔은 당시 이집트에 충성했던 나라였기 때문에 파괴의 이유를 찾지 못한다고 말하고 있다. 이집트가 아니라면 학자들은 주변 가나안 국가들이 파괴의 주인공일 수 있다고 하지만 당시 하솔 주변에는 하솔만한 강대국은 있지 않았다. 이는 성서에서도 분명 언급하고 있는 바이다. 또한 비슷한 시기에 가나안 땅에 정착했던 블레셋 사람들이 파괴했다고 하기에는 파괴 흔적 어디에도 블레셋의 독특한 토기 조각 하나 발견되지 않고 있어 이 설 역시 타당하지 않다. 결국 남겨진 것은 이스라엘 민족으로 여호수아서에 기록된 것처럼 가나안 땅의 어머니였던 하솔 왕 야빈과 그의 백성은 여호수아의 칼날에 죽었으며 도시는 불로 진멸 당했다. 주전 1200년경 파괴되면서 하솔의 하부 도시는 더 이상 아무도 살지 않았다. 다만 상부 도시만이 이스라엘의 왕국시대에 재건축되었고 병거성의 역할을 하였다.

<하솔 계속>

◇공동 집필

임미영 박사


<평촌이레교회 협동목사, 서울신학대학교 한신대학교 장신대학교 강사>

김진산 박사

<새사람교회 공동목회, 서울신학대학교 호서대학교 건국대학교 강사>

[출처] - 국민일보